오피니언 사설

끝내 의문사위 두둔한 노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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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노무현 대통령은 어제 제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의문사위의 활동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드릴 생각이 없다"고 했다. 끝내 의문사위를 두둔한 것이다. 이러고도 대한민국의 민주헌정질서를 수호해야 하는 대통령의 책무를 다하고 있다 할 것인가.

의문사위의 활동 중 특히 문제가 된 것은 미전향 장기수를 민주화 기여자로 판정한 점과 간첩 혐의로 복역한 사람을 조사관으로 기용한 대목이다.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에 따르면 의문사는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의문의 죽음'이며, 민주화운동 보상법에 따르면 민주화운동은 '1969년 8월 7일 이후 민주헌정질서 확립에 기여한 활동'을 뜻한다. 미전향 장기수가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로 억울하게 죽었다면 그것대로 밝히면 될 일이지, 그 자체가 민주화운동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1기 의문사위조차 "민주화운동과는 연관성이 없다"며 기각했고, 민주화보상심의위도 "헌정 질서를 부인하고 국가 안전을 위협한 사람들이 반민주 악법의 폐지를 주장했다고 그들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라고 인정할 수 없다"고 결정하지 않았던가.

노 대통령이 이런 명백한 문제점을 보면서 의문사위 활동에 대해 왜 질책하지 않는가. 노 대통령은 "의문사위의 활동은 법적으로 독립돼 있는 만큼 존중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의문사위는 어떤 통제와 견제도 없이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의문사위는 분명히 대통령 소속 기관이다. 간첩 혐의로 복역한 사람이 의문사위의 조사관이 돼 군 장성들을 조사한 대목에 대해서도 군 통수권자로서 유감을 표시했어야 한다.

우리는 의문사위의 월권과 부적절한 처신에 대해 대통령이 잘못을 지적함으로써 소모적인 '정체성' 논란을 종식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한 술 더 떠 "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해 의문사위를 공격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이를 '대통령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 정치적 싸움으로 몰아가니 답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