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세희 기자의 의료현장 ⑥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백선하 교수의 파킨슨병 뇌심부 자극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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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 치료 초기엔 약 기운이 도는 동안엔 일상생활이 가능했다. 물론 약 기운이 떨어지면 온몸이 굳어져 누워지내야 했다. 하지만 약효는 서서히 감소됐고 약 용량을 조금씩 늘려야 했다. 그러자 어지럼증·불면증 등 부작용이 심해졌고 특히 최근엔 목이 조이는 느낌 때문에 밥 먹기조차 불편해졌다. 약 먹은 직후엔 온몸이 멋대로 이상하게 움직이는 부작용도 생겼다.

더 이상 약만으로는 병을 다스리기 힘들어지자 강씨는 지난 4월, 서울대병원 파킨슨센터를 방문했다. 이 센터에선 신경과 전범석 교수와 신경외과 백선하 교수가 함께 진찰하고 치료 방향을 정한다.

두 교수는 강씨에게 “약 용량을 줄인 상태에서 일상생활을 편하게 하려면 ‘뇌 심부 자극술’이란 수술을 받는 게 좋다”고 권했다. 강씨는 18일, 수술을 위해 입원했다. 21일 저녁, 강씨는 다음 날 받을 뇌수술을 위해 삭발을 했다.

1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백선하 교수가 뇌에 전극을 삽입하는 시술을 하고 있다. 2 수술 중 환자의 뇌를 고정시키는 틀(뇌정위틀)을 조작하고 있다. 3 수술 전 뇌MRI 사진과 수술 후 뇌CT 사진을 합성한 영상.


뇌에 전극 5개 삽입 후 자극 줘

22일 오전 7시, 강씨의 머리에 수술 도중에도 머리가 고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금속으로 만들어진 둥근 틀(뇌정위틀)을 씌우는 시술이 시작됐다. 이걸 착용해야 하시상핵이라는 뇌 속 깊은 곳에 전극을 정확히 삽입할 수 있는 데다 뇌 자기공명영상촬영(MRI)을 다시 해 수술장에서 기준점을 정교하게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7시30분 뇌 MRI 촬영을 시작한 강씨는 8시에 드디어 수술장에 들어왔다.

마취과 의사가 양쪽 눈썹 부위에 부분 마취를 시작했다. 그는 기자에게 “이렇게 마취하면 환자가 깨어 있는 상태에서 뇌에 전극을 삽입하더라도 통증을 느끼지 않고 수술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부분 마취 후 강씨의 얼굴엔 소독된 비닐막이 씌워졌다. “수술 결과가 좋으려면 전극을 삽입한 뒤 환자와 대화를 해야 하기 때문에 방포 대신 비닐을 씌웁니다.”(백 교수)

백 교수가 환자 머리 부위에 자리하면서 본격적인 수술이 시작됐다. 백 교수는 일단 양쪽 머리 윗부분 두피를 각각 직경 3㎝ 정도씩 절개한 후 뒤로 제쳤다. 두개골이 드러난다. 연이어 드릴을 사용해 머리뼈에 직경 14㎜의 구멍을 낸다. 그러자 뇌를 둘러싼 막이 드러나고 그 너머로 뇌가 보인다. 백 교수는 이곳에 다섯 개의 전극이 달린 14㎜ 직경의 기구를 심었다.

신경 반응 좋은 곳에 전극 고정

이후 왼쪽에 삽입된 전극 5개를 번갈아 자극하면서 강씨에게 질문을 한다.

“오른쪽 다리를 들어 보세요.”(백 교수)

강씨가 10㎝쯤 힘겹게 든다. 이번엔 전극을 자극하면서 백 교수가 “오른쪽 다리를 들어 보세요”라고 하니 이번엔 강씨가 발을 30㎝ 정도 여러 번 반복해서 든다. 놀라운 변화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해보세요”, “눈을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위로, 아래로….”(백 교수). 강씨는 부지런히 백 교수의 지시를 따른다. 전극을 자극하자 “주소와 전화번호를 말해 보세요”란 주문에도 비교적 명확하게 대답한다. 백 교수는 “앞쪽 전극이 가장 반응이 좋지?”라며 전공의들에게 설명을 한다.

이제 양쪽 어깨뼈에 각각 배터리를 심어 뇌에 삽입된 전극과 연결시키는 일만 남았다. 배터리와 전극의 연결은 두피에서 어깨 위까지 피부 아래로 터널을 뚫은 뒤 이루어졌다.

강씨는 수술 다음날인 23일부터 전기회로가 잘 작동했고 환자의 움직임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강씨는 26일 웃는 모습으로 퇴원했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파킨슨병 뇌심부 자극술은
약물 효과 떨어지면 수술 받아 … 배터리 교체해줘야

파킨슨병 환자 중 상당수는 ‘중풍기가 있다’는 말만 듣고 아무런 치료도 받지 않고 지낸 경우도 많다. 65세 이상에서 100명당 한 명꼴로 발생하는 퇴행성 질환인데 체질적으로 젊은 나이에 발병하는 환자도 있다. 파킨슨병은 환자가 몸의 이상을 감지할 즈음엔 이미 도파민이 80% 이상 없어진 경우가 많다. 초기 증상은 발병하기 몇 년 전부터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피로가 계속되고 무력감을 잘 느낀다. 기분이 이상해져 쉽게 화를 내기도 한다. 얼굴은 점차 무표정해지고(포커 페이스), 우울증·소변장애·수면장애·허리나 목의 통증도 나타날 수 있다. 치료 1단계는 강씨처럼 부족한 도파민을 보충해주는 약물 치료다. 하지만 평생 복용해야 하다 보니 부작용도 있고 흑질 파괴가 진행되면서 약효 자체도 떨어진다. 따라서 환자 상태에 따라, 또 부작용 유무에 따라 약 종류와 용량을 조절해야 한다. 그래도 약효가 현저히 줄거나 부작용이 심할 땐 뇌 심부자극술을 받아야 한다. 이 수술법은 1987년 개발됐고 국내엔 의료보험이 적용된 2005년 이후 수술 받는 환자가 늘었다.

수술 후에도 약을 완전히 끊기보단 용량을 절반 이상 줄이는 수준에서 만족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 다.

또 자극을 주는 배터리도 수명이 4~5년 정도라 교체 시기가 되면 국소 마취로 교환하는 시술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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