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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를 위한 변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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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경제학자의 예측은 어느 정도 틀렸을까.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불거지기 직전인 지난해 9월 초 예측기관들의 미국 4분기 경제성장률 전망치 평균은 0.2%였지만 실제로는 마이너스 6.3%를 기록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지난해 7월 전망한 미국의 2008년 4분기 실업률은 5.5~5.8%였는데 실제 수치는 6.9%였다. 같은 시점에서 전망한 올해 4분기 실업률은 5.2~6.1%이지만 실업률은 이미 8.5%까지 차올랐다.

사실 경제예측은 틀리기 쉽다. 아니, 오히려 정확히 맞아떨어지면 그게 화제가 된다. 오죽하면 몇 년 전 한국은행 총재가 경제 전망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차라리 점쟁이에게 물어 보라”는 말까지 했을까. 농담조로 한 말이지만 당시 한은 총재의 가벼운 발언은 구설에 올랐다.

기사를 읽으면서 경제학자에 대한 야유보다 더 눈길을 끌었던 것은 미국 학계의 다양한 논쟁이었다. ‘우리는 다시 모두 케인스주의자(We’re All Keynesians Again)’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케인스가 떴고, 금융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세계 각국 정부는 케인스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이행했다. 노벨상 수상자인 프린스턴대의 폴 크루그먼이나 경제 위기를 예측해 주목받은 뉴욕대의 누리엘 루비니 등은 정부 개입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하지만 의견이 다른 학자들도 오롯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들은 정부 개입보다 경제의 자기조정 기능을 신뢰하며 저금리와 정부의 과잉 재정지출이 효과는 없고 나랏빚만 키운다고 우려한다. 하버드대의 로버트 배로, 시카고대의 로버트 루커스, 애리조나 주립대의 에드워드 프레스코트 같은 이들이 이런 부류다. 우리 학계도 한국 정부의 위기 대책을 놓고 다양한 논쟁을 벌였으면 한다. 재정투입의 시급성을 강조하는 주장이 있다면 ‘재정투입 승수(乘數)효과가 별로 없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는 것 아닌가.

반대 없는 힘센 주장일수록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미국 33대 대통령인 해리 트루먼은 “외팔이 경제학자를 만나 봤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한편으로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꼭 토를 다는 경제학자에 대한 야유지만 경제학은 원래 그런 학문이다. 800조원의 부동자금이 증시를 띄우고 부동산을 들쑤시고 다니는 요즘 같은 때는 ‘한목소리’가 더 위험해 보인다. 그런 점에서 “현재 경기에는 긍정적 요인과 부정적 요인이 혼재돼 있다. (경기를) 낙관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말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조심스러운 진단에 차라리 더 믿음이 간다.

서경호 중앙SUNDAY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