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송호근 칼럼

미사일 ‘쇼’와 G20의 ‘데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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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인민들의 고단한 삶은 알 바 아니라는 듯 3000억원짜리 광명성 2호가 하늘로 솟구쳤다. 한·미·일의 첨단 감시기구가 지상과 공중에서 분주히 작동하는 가운데 굶주린 강성대국의 ‘빛나는 혁명무력’은 수천㎞를 보란 듯이 날아갔다. 6자회담의 당사국들이 아무리 말려도, 지레 겁먹은 일본과 귀찮아 죽을 지경인 미국이 온갖 수단을 동원해 윽박질러도 북한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3년 전 대포동 2호를 쏘고 핵실험을 강행할 때도 그랬다. 그것은 북한식이었다. 궁지에 몰린 유일 공산국가의 떼쓰기, 서방과의 협상을 비웃는 무력시위, 그리고 선군정치의 돌파구라는 다목적 전략은 북한을 아예 ‘국제 이단아’로 몰고 갔다. 그러니 구경하고 있을 수밖에. 수천㎞를 날아간 저 광명성 2호에 탁구공만 한 핵탄두가 탑재될 것임이 빤히 보여도 저 ‘미사일 쇼’를 속수무책 관람하고 있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말해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국제 핵질서나 6자회담 같은 정통 접근법으로는 이단아 북한을 달랠 수도, 북한 핵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6자회담만 해도 그렇다. 2003년 8월 개최된 이래 김정일 위원장과 북한 군부의 태도를 바꾸는 데에는 효력이 없었다. 역으로 평양 정부는 6자회담을 서방에 보내는 메시지 창구로, 시간 벌기의 지렛대로 활용해 왔다는 인상을 짙게 남긴다. 2년 전 영변 핵시설 폭파 시위도 의문투성이다. 버려진 공장 굴뚝 같은 것이 과연 핵시설일까 하는 의혹이 가시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북한은 갈 길을 갔다. 2006년 대포동 2호는 490㎞를 비행했다. 핵보유 능력을 의심했던 미국에 대해 핵실험을 강행했다. 올해는 광명성 2호를 태평양 한가운데 떨어뜨렸다. 그렇다면 핵과 미사일을 통제하는 국제감시망을 뚫고 일본은 물론 미국 본토까지 핵 공격이 가능하다는 것을 조만간 입증할 것이다. 이제 대북한 전략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광명성 2호는 서방의 정통 외교도, 우리의 햇볕정책과 포용정책도 무용했음을 알리는 평양의 포고문이었다.

그럼에도 G20 정상회의는 겨우 데모 수준에 불과했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총리는 국민의 공포심을 알리느라 수선을 떨었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한국과의 친밀감을 과시하려 이명박 대통령과 귀엣말을 주고받았다. 유사시에 양국 공조가 언제라도 가능하다는 표시였을 것이다. 첩보위성과 북미방공우주사령부가 풀가동 중이고, 요격시설을 갖춘 이지스함이 동해에 떠 있으니 염려 말라, 유엔 안보리 추가 결의도 불사한다는 등의 말도 덧붙여졌을 것이다. 그런데 어제 급히 열린 유엔안보리는 로켓 발사를 확인하는 수준이었다. 데모 외교, 다자 회담, 안보리 결의 같은 방식은 ‘무용한 정통’이 되었으며, 극단적인 경제제재도 무력함이 드러났다.

정말 답답한 것은 남한 정부다. 한국이 최우선의 당사자인 만큼 국제사회는 한국정부의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대북 정책을 기대한다. 그러나 할 일이 없다. 그동안 공들인 대화 창구마저 폐쇄된 마당에 저 ‘미사일 쇼’에 남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성명서 낭독, 워싱턴에 편승해 성토하기, 대량살상무기 확산금지구상(PSI)에 참여하겠다는 으름장 정도다. 현 정권에서 가장 쉬운 자리가 통일부 장관이라는 말이 나옴 직도 하다.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미·일이 공조해 요격 능력을 갖추는 것, 300㎞에 묶인 한국의 미사일 기술을 격상하는 것 등이 가능한데, 그것은 군비경쟁을 촉발한다. 그러니 평양이 끊어버린 핫라인을 우선 복구해 ‘미사일 선군정치’를 ‘경제적 선군정치’로 선회시킬 묘안과 강력한 시그널을 꾸준히 발신해야 한다. 닫힌 문 앞에서 불평만 하다만 보수정권, 곧 이런 비난이 쏟아질지 모른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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