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은 떠나는 모습마저 아름다웠다. 사는 동안 미리 죽음을 준비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가진 것을 남김없이 베풀고 가겠다는 뜻에서 1990년 일찌감치 장기 기증을 서약했다. 또 마지막까지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고자 의료진에게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절대 하지 말 것을 여러 차례 당부했다. 그런 의사를 주변에서 존중해 줬기에 김 추기경은 편안히 삶을 마감할 수 있었다. 선종 직후 안구 적출 수술도 실시됐다. 고인은 떠났어도 머잖아 그의 각막을 이식받아 두 생명이 새 빛을 찾게 된다.
김 추기경의 아름다운 마무리는 웰빙 못지않게 ‘웰다잉(well-dying)’ 역시 중요함을 일깨워 준다.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이 별 준비 없이 죽음을 맞고,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방식으로 삶의 마지막을 보내는 게 현실이다. 존엄사 제도의 정착이 시급한 건 그래서다. 환자들이 생전 유언을 통해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호스피스 등 치료 여부를 선택하도록 하고 가족과 의료진이 이를 존중하는 시스템이 뿌리내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의료기술의 획기적 발달로 회생 가능성이 희박한 환자들마저 오랜 기간 기계에 의존해 고통스럽게 목숨을 부지하다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다. 김 추기경처럼 사전에 연명 치료 거부 의사를 밝힌 경우에도 이를 따른 의료진이 형법상 살인방조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 게 현 실정이다. 주치의가 교구청에 공증을 요구하고, 정진석 추기경이 “내가 책임지겠다”고 나서야 했던 이유다. 더 이상의 혼란을 막자면 존엄사의 명확한 제도적 기준이 확립돼야 한다.
아울러 김 추기경의 베풂 정신이 널리 퍼져 장기 기증이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현재 국내에서 장기 이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환자가 1만8000여 명에 달한다. 그러나 장기 기증자는 그에 훨씬 못 미친다. 지난해 뇌사 장기 기증자가 사상 최다였지만 여전히 256명에 불과하다. 각막 이식 대기 환자도 3600여 명이지만 지난해 기증자는 88명에 그쳤다. 남은 자들에게 새 삶을 선물하고 가는 것만큼 아름다운 마무리는 없다. 김 추기경의 선종이 좋은 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