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쥐 얼씬 못하는 향기 쓰레기봉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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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덕일산업]

#나는 온갖 쓰레기를 담는 봉투다. 그런데 환경미화차에 몸을 싣기도 전에 고양이나 쥐들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이들은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으로 내 안에 담겨 있는 먹다 남은 과자와 빵 조각 등을 노린다. 이런 내용물이 길가에 쏟아지면 지나가는 사람들은 코를 막고 미간을 찌푸리기도 한다. 환경미화원들은 “수거하기 어렵다”고 불만을 터트리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성한 상태’로 미화차에 실릴 수 있을까.

충북 청주시가 지난 1일부터 ‘향기나는 종량제 쓰레기봉투(이하 향기봉투)’ 210만장을 시민들에게 공급했다. 향기봉투는 총북 옥천군에 위치한 덕일산업(쓰레기봉투 제작업체)의 민병덕(56) 대표가 개발해 특허를 낸 제품이다. 정확한 명칭은 동물기피기능 쓰레기봉투. 그동안 길거리에 놓여진 일반 쓰레기봉투는 쥐와 고양이, 혹은 개들의 ‘밥’이었다.

민 대표는 그동안 동물들이 쓰레기봉투 안에 담긴 내용물을 먹기 위해 봉투를 훼손하는 광경들을 여러차례 목격했다. 도시미관을 해치고 오물질 방출로 인해 악취가 나는 등 문제가 많았다. 또 뜯겨진 봉투를 수거하는데 별도의 인력이 투입돼 예산도 낭비됐다. 그는 지난해 초 쓰레기봉투 원자재에 폴리에틸렌과 착색제, 동물기피 첨가제 등을 혼합해 ‘향기 봉투’를 만들어 냈다.

“동물들은 싫어하고 소비자는 좋아하는 향을 넣기로 했어요. 여러 대학의 수의학과와 동물병원 등이 낸 자료를 보니 동물들은 대체로 레몬향을 싫어한다고 하더라고요.” ‘개짖음 방지용 목걸이’가 레몬향을 분사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사람보다 후각이 예민한 동물은 자극적인 레몬향을 싫어한다.

민 대표는 충북 영동군청 환경과와 협업해 수차례 테스트를 거쳤다. 지난해 2월 11일 향기봉투와 일반 봉투에 음식물을 넣고 길가에 방치한 뒤 48시간 동안 유기견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실험했다. 그 결과 향기봉투는 온전한 모습으로 남은 반면 일반 봉투는 모두 헤집어졌다. 그는 지난해 말 향기봉투를 조달청에 등록했다.

개발 당시 첨가제가 고가였기 때문에 일반 봉투에 비해 약 20%가량 비쌌지만 조달청과 협의 끝에 일정 물량을 생산하는 조건으로 일반 봉투보다 1원 비싸게 팔기로 했다. 민 대표는 “향기나는 쓰레기 봉투가 악취와 쓰레기에 대한 혐오감을 줄이고 유기동물들이 봉투를 뜯어서 지저분하게 만드는 일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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