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개혁’ 릴레이 인터뷰 ⑤ 진길부 도드람양돈협동조합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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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호 24면

진길부 조합장이 15일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에 있는 도드람푸드 가공공장 시설을 설명하고 있다.

15일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3번 국도 옆. 인공 바위산 절벽에 매달린 사람과 절벽 위 돼지 모습을 보여 주는 커다란 구조물이 눈에 띈다. 인근 도드람산에서 전해지는 옛 이야기를 형상화한 것이다. 절벽에 매달려 석이버섯을 뜯던 효자가 멧돼지 울음소리 덕분에 몸을 의지하고 있던 밧줄이 바위에 닳아 거의 끊어져 가던 위기를 모면했다는 내용이다. 그 옆에 도드람양돈조합 본부가 있다. 3층 본부 건물은 투명 유리로 돼 있어 밖에서도 일하는 모습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도드람은 ‘돝’(돼지의 옛말)과 울음의 합성어로 도드람산 전설에서 유래한 말이다.

“철저하게 기업처럼 그래야 살아남는다”

진길부(62) 조합장이 이끌고 있는 도드람양돈조합은 경제사업을 잘하고 있는 대표적 품목조합으로 꼽힌다. 1993년 일찌감치 도드람 브랜드육을 시장에 내놓고 양돈 생산에 전산관리 기법을 도입했다. 요즘 많이 강조되는 마케팅 판매농협의 원조 격이다. 금융을 제외해도 사료와 생돈·브랜드육 판매 등으로 벌어들이는 매출(사업 취급액 기준)이 지난해 4000억원을 넘어섰다. 웬만한 중견기업에 비해서도 꿀리지 않는 규모다. 예수금 2000억원과 대출금 1600억원 등 신용(상호금융) 부문 취급액까지 합치면 조합 외형이 75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40억원 넘는 흑자를 내 일부는 조합원에게 배당도 했다. 이렇게 잘나가는 조합이지만 진 조합장의 연봉은 5500만~6000만원 수준이다. 그는 “조합원에게 봉사하는 조합장이 고액 연봉을 받으면 되겠나”라고 반문했다.

도드람조합은 농협 회원조합에 불과하지만 흔치 않게 전국망을 갖췄다. 워낙 사업을 잘하다 보니 양돈농가가 모여들었다. 2003년 전남·북 양돈농협과 합병해 몸집을 더 키울 수 있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경남과 제주를 제외한 전국 745호 농가를 조합원으로 모았다. 전국 양돈 농가의 9%다. 조합원이 사육하는 돼지는 146만 마리로 전국 사육 마릿수의 14%에 달한다. 가장 큰 자랑거리는 조합원을 위한 생산 지원과 공동출하 사업이다. 조합이 직접 박사·수의사·석사 등 전문인력 24명으로 구성된 농가 컨설팅 조직을 운영한다. 축산농가 생산비의 60~70%를 차지하는 사료를 싸게 공급하기 위해 사료 공장 ㈜파레스와 사료유통회사 ㈜DS도 운영한다. 조합원에게 필요한 사료 물량의 40%를 조합 사료공장에서 댄다.

이천에서 자동차로 30분 정도 이동해 도착한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도드람조합은 이곳에서 ㈜도드람LPC(도축장)와 ㈜도드람푸드 가공공장을 운영 중이다. 진 조합장은 도축장과 가공공장의 첨단 시설을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국내 돼지 도축 마릿수의 8%가 이곳에서 처리된다. 도축된 돼지를 부위별로 나누는 가공공장 출입구엔 에어샤워 설비까지 설치했다. 진 조합장은 “이곳이야말로 우리 조합 사업의 첫 단계”라고 했다. 돼지를 키우고 생산하는 양돈농가가 첫 단계가 아니라 소비자와 가장 가까이 있는 가공공장이 첫 단계라는 발상이 신선했다. 그는 “협동조합 선진국인 덴마크와 네덜란드 농협에선 ‘판매점에서 농장으로(From shop to farm)’라고 한다”며 “생산 단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도 판매를 위한 협동조합으로 중심축을 옮겨야 한다”고 설명했다.

도드람조합은 ‘기업형 협동조합’으로 성공했다. 협동조합 원칙은 지키면서 기업의 효율성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진 조합장은 “선진국에서도 ‘농민이 통제하는 기업(Farmers-controlled enterprise)’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며 “철저하게 기업이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농협중앙회 축산경제사업이 매년 500억~600억원의 적자를 내는 것은 기업과 달리 책임 소재를 확실하게 따지지 않는 데다 전문성도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그에게 요즘 현안인 농협 개혁에 대해 물었다.

-농협 개혁이 이번엔 잘될 것 같은가.
“농협중앙회는 강하다. 중앙회의 방어력이 100이라면 개혁 세력의 힘이 300은 돼야 개혁할 수 있는데, 지금은 100도 안 되는 것 같다. 농협 안팎의 개혁 세력을 키워야 한다. 법과 제도만 바꾼다고 되는 게 아니다. 사람이 바뀌고 의식이 달라져야 한다.”

-농협을 어떻게 바꿔야 하나.
“농협의 주인은 농민이다. 이걸 농민, 농협 직원, 조합장 모두 잘 모르는 것 같다. 농협 회장이나 임직원도 누가 주인인지, 누구에게 충성해야 하는지 너무 모른다. 세계에서 협동조합을 제일 잘한다는 덴마크 농협 관계자에게 성공 요인을 물었더니 ‘농협을 농민이 소유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협동조합 직원은 농민에 대한 투철한 충성심과 고도의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둘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물러나야 한다. 농민 위에 군림하거나 자기 이익과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일하는 임직원은 하루빨리 떠나야 한다.”

-중앙회가 회원조합과 경쟁하는 사업을 하는 것을 평소 많이 비판해 온 것으로 안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것처럼 우리나라 농업협동조합엔 협동이 없다. 중앙회와 회원조합 간에, 그리고 회원조합 간에도 협동이 없다. 중앙회가 인근 지역에 새 도축장을 짓고 있다. 주변에 현대식 도축장이 밀집해 있고 도드람조합 등 회원조합이 운영하는 공판장이 있는데 중앙회가 경합 사업을 하면 같이 망하자는 얘기인가. 사료 사업과 돼지고기 브랜드 사업도 마찬가지다. 지금 농업협동조합의 돼지고기 브랜드가 전국적으로 317개에 달한다.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국회의원까지 나서 너도나도 브랜드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민 스스로 반성할 점은 없나.
“농민도 주인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조합을 철저하게 감시·감독해야 한다. 국민 세금으로 연명하는 보호 대상자가 돼선 안 된다. 농축산물을 잘 팔아 그 수익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경제 주체가 돼야 한다.”

-협동조합이 왜 필요한가.
“위기의 한국 농업을 살리려면 협동조합 시스템이 유일한 대안이다. 규모의 영세성, 자본의 취약성, 부족한 정보력과 시장 교섭력을 일시에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다.”

도드람조합은 16일 5대 조합장 선거를 치렀다. 지난 13년간 조합을 이끌어온 진 조합장은 출마하지 않았다. “너무 오래했고 세대교체도 필요했다”는 이유에서다. 다음 달 그는 돼지 1만 마리를 키우는 평조합원으로 돌아가 양돈조합의 힘을 키우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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