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4대 강 개발 청사진 보이지 않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1947년 4월,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네바다주와 애리조나주를 흐르는 콜로라도강의 볼더(Boulder)댐 이름을 바꾸는 법안에 서명한다. 바뀐 이름은 후버(Hoover)댐. 31대 대통령(1929~32년 통치) 허버트 후버를 기리기 위해서였다. 후버 대통령은 20세기 가장 혹독했던 대공황(1929~39년)의 초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인물이다. 하지만 미 의회는 그가 대공황 극복을 위해 댐을 세우기로 결정한 점만큼은 높이 산 것이다.

댐은 뉴딜정책의 하나로 1931년 착공돼 36년 완공됐다. 높이 221m(63빌딩의 높이는 264m), 저수량 336억t(소양강 댐의 저수량은 29억t)으로 당시 세계 최대였다. 공사 기간에 하루 최대 5000개의 일자리가 생겼다. 미 전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섭씨 48도까지 오르는 살인적 더위 속에서 일을 하면서 가족을 지켰다.

후버댐의 가치는 여기서 끝났지 않고 대공황 이후 더욱 소중한 존재가 됐다. 미국의 개척정신을 상징하며 지속적으로 경제발전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콜로라도강을 다스리게 되면서 홍수가 사라져 남부 캘리포니아 지역이 발전할 수 있었다.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네온사인도 후버댐 없이는 켜지지 않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연간 800만 명의 관광객과 건축가들이 후버댐을 찾아 돈을 쓰고 간다. 처음 설계 당시 후버댐은 무미건조한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었다. 그러나 미 정부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유명 건축가 고든 카우프만에게 디자인을 다시 맡겼다. 우아한 유선형의 건축물은 이렇게 탄생했다. 미국 토목학회는 후버댐을 ‘7대 경이로운 건축물’로 선정했다. 이런 미래를 내다 본 정부의 알찬 투자는 민간 기업에도 영양분이 됐다. 후버댐 공사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벡텔사가 단적인 예다.

새해 들어 한국판 뉴딜사업이 시작됐다. 4대 강 살리기다. 일부에서는 대운하 공사가 아니냐며 딴죽을 걸지만, 그럴 때가 아니다. 이미 실직의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20대와 30대의 일자리는 전월에 비해 각각 13만 개 넘게 줄었다. 좌고우면하지 말고 나랏돈을 더 퍼부으라는 목소리가 나올 만한 상황이다.

그러나 나랏돈을 제대로 쓰는지는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 돈을 무작정 푼다고 위기를 극복하는 게 아니다. 지금은 과감히 돈을 풀되, 이 돈이 미래 성장의 씨앗이 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일본은 92년 이후 잃어버린 10년 동안 13차례에 걸쳐 총 100조 엔 넘는 돈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남은 것은 텅 빈 곳간과 쌓인 빚더미였다. 눈앞의 위기에 급급해 당장 효과가 나타나는 토목공사에 주로 돈을 쓴 결과다.

우리도 4대 강 사업에 3년 동안 총 14조원을 들인다. 대부분 금쪽 같은 국민 세금이다. 하지만 이런 귀중한 돈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쓸지 밑그림이 분명하지 않다. 정부는 19만 개의 일자리가 생길 거라는 두루뭉술한 얘기만 한다. 일자리의 질은 어떤지, 미래에도 좋은 일자리가 계속 생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5월까지 계획을 내놓겠다고 한 게 전부다.

정부의 행동이 굼뜨니 돈이 풀리는 속도도 느리다. 첫 삽을 뜬 낙동강과 영산강 현장에서는 “착공식만 했을 뿐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는 말만 들려온다. 강바닥을 파고, 강기슭을 다듬는 단순 토목공사로는 곤란하다. 자전거 도로를 만드느니, 공원을 만드느니 하지만 이게 질 좋은 일자리가 되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건 일회용 일자리만이 아니다. 뿌린 씨앗을 풍성한 열매로 거둘 수 있도록 확실한 청사진을 짜야 한다. 미 정부는 후버댐을 짓는 데 쓴 1억6500만 달러를 댐에서 생산한 전기를 팔아 다시 국고로 회수했다. 그것도 이자까지 쳐서 말이다.

김종윤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