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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편견·경멸로 얼룩진 한·일 ‘애증 60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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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조선인의 일본관, 일본인의 조선관
금병동 지음, 최혜주 옮김, 논형
각권 268쪽·332쪽, 각권 1만6000원

먼저 저자 이야기를 해야겠다. 금병동(1927~2008).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난 재일 사학자다. 일본이 한국에 가해 왔던 ‘전쟁 범죄’를 평생토록 고발해 온 인물이다. 관동대지진 때 일본의 조선인 학살을 집요하게 추적했고,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끌고 가 동남아·포르투갈 등에 노예로 팔아버린 조선인의 행방을 좇는 일에도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친일파’로 낙인 찍혀버린 한말 비운의 풍운아 김옥균의 개혁 사상을 재조명하는 일도 그의 주요한 학문적 여정이었다.

조총련계인 그는 일본의 조선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이념적 배경 탓인지 한국 방문은 한 차례도 없었다고 한다. 일본 땅에서 거침없이 그들의 침략사를 고발하는 저서를 여러 권 냈으나 정작 한국에선 지금까지 번역본이 나오지 않았다. 이번에 처음으로 번역이 진행되는 중 지난해 9월 저자는 심장마비와 폐렴의 악화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한국어 번역본 출간은 그의 유언이 돼 버린 것이다.

이번에 번역된 『조선인의 일본관』과 『일본인의 조선관』은 한·일 관계의 뿌리 깊은 반목과 갈등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의 시선은 냉정하다. 한·일 우호의 적당한 ‘외교적’ 해법보다 갈등의 뿌리와 본질을 가감 없이 캐내고 펼친다.

조선통신사 행렬이 에도 니혼바시 거리를 지나 숙소로 향하는 광경을 그린 18세기 그림(왼쪽)에는 ‘청도(淸道)’라는 깃발이 보인다. 통신사가 ‘길을 닦아라’는 뜻의 문구가 적힌 깃발을 들고 행진한 것에 대해 일본 학자들은 모멸감을 느끼기도 했다. 통신사 일행에는 마상재인(馬上才人)도 포함돼 기마술을 뽐냈다(오른쪽 그림). [논형 제공]

한·일 선린우호의 역사적 상징으로 자주 거론되는 조선통신사에 대한 평가도 그렇다. 그는 “현재 통신사 문제를 우호 하나로 논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사실에 비추어서도 동전의 한 면만을 보고 있는 것이다”고 지적한다. 1607년에서 1811년에 걸쳐 12차례 파견된 조선통신사는 명분과 목숨을 건 팽팽한 기싸움이기도 했다. 막부는 조선통신사를 ‘조공 행렬’로 조작하려 들었고, 조선의 사절은 “바다를 건너면서 목숨은 이미 버렸다”며 죽음의 각오로 맞섰다. 조선통신사에 대한 반감의 뿌리는 아라이 하쿠세키(1657~1725)가 기초한 것이다. 도쿠가와 시대 최고의 정치가이자 학자인 그는 조선통신사에 대한 예우를 격하시켰다. 당시 일본 학자들은 조선 측이 내보이는 ‘문화적 우월 의식’에 대한 반감이 컸다. 조선은 무력으로 안 되니까 문(文)으로 설욕하려 든다고 여겼던 것이다.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은 어떤가. ‘정한론(征韓論)’으로 유명한 사이고 다카모리(1827~1877)의 고향 사쓰마번은 청년들에게 히데요시의 ‘조선 정벌’을 200년 간이나 가르쳐 온 곳이다. 당시 공을 세운 가문들은 가업의 자랑으로서 임진왜란의 무공을 과장해가며 대대로 전수했다. 얄궂은 일은 근대 일본의 첫 ‘민주화 운동’이라 할 만한 ‘자유민권운동’이 정한론에서 파생했다는 것이다. 정부가 시기상조라며 정한론을 거부하자 조선 정벌의 지지자들은 ‘메이지 독재’에 항거하는 투사가 됐다.

책을 읽은 독자는 까마득한 벼랑 위에 섰을지도 모르겠다. 아득하다. 한국과 일본. 이웃한 두 나라의 역사 속에는 피와 증오의 격랑이 소용돌이 친다. 감정은 마그마처럼 부글거리며 으르렁대다가 순식간에 단단한 바위처럼 냉정하게 굳는다. 일본이 한국에 대해 갖는 민족적 편견과 경멸감, 한국이 일본에 대해 갖는 피해의식과 적대감의 뿌리는 깊다. 하지만 ‘진실’의 반석 위에서야 진정한 ‘화해’를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 고인이 된 저자의 취지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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