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째 국회 밖 머물다 ‘장고 끝 악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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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국회의장=“고언은 달게 받겠다. 오죽했으면 부산에 왔겠나. 그렇게 받아 달라.”

29일 오전 부산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 중에 부산 지역 기자와 김 의장 사이에 오간 문답이다.

민주당 의원들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단독 상정에 항의해 지난 18일 의장실을 점거한 이래 김 의장은 이날로 12일째 국회 밖을 떠돌고 있다. 이 기간 동안 하루에 잠깐씩 국회 사무총장실에 들러 언론과 인터뷰 등을 한 뒤 주로 여의도 주변의 호텔 등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27일 이후엔 아예 서울을 떠나 수원 용주사와 경남 양산의 선영을 거쳐 지역구인 부산(영도)에 머물렀다. 양산 선영에서 찍은 사진이 홈페이지에 실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고심하는 모습을 보인 뒤 내놓은 김 의장의 중재안은 여야 모두로부터 비판을 받는 ‘장고 끝 악수’가 됐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엔 연내 쟁점 법안의 처리 무산이라는 실망을, 민주당엔 29일 자정까지 점거 농성 해제라는 쓴잔을 요구했다. 그 보상으로 제시한 건 ‘선(先) 민생법안 처리, 후(後) 쟁점법안 협의’라는 모호한 제안이었다.

한나라당 구상찬 의원은 “여야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한 타협안에 불과한 것 같다”고 평했다. 원내 전략을 맡고 있는 한 의원은 “이런 중차대한 때에 한가롭게 지역구에나 가 있다는 게 말이 되나. 본회의장에 진입하면서 봉변을 당하더라도 의장은 국회를 지켜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행동은 모두 의장 퇴임 이후의 정치 행보에 대비한 ‘이미지 제고용’이란 생각밖에 안 든다”고 비판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에선 특히 계류 중인 쟁점 법안 대부분이 김 의장의 손을 거친 사안들이란 점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김 의장은 대선 당시 선대위 일류국가비전위원장을 맡아 현 정부의 공약을 마련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금산분리 완화와 출자총액제한 폐지, 신문과 방송의 겸영 허용 등 쟁점 법안의 얼개가 당시 공약집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 의장은 대선 후엔 인수위 부위원장을 맡아 이를 구체화하는 데도 관여했다. 인수위에서 같이 활동했던 진수희 의원은 “중점 처리 법안 85개 중 대부분이 김 의장이 관여해 만든 공약”이라며 “김 의장이 자신이 만든 공약까지 포기하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국회 운영에 전권 가져=김 의장 이 주목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여야의 합의 불가로 국회가 교착 상태에 빠질 경우 이를 해결할 유일한 인물이 국회의장이다. 중요한 고비 때 의장이 움직이지 않으면 국회는 사실상 마비되는 셈이다.  

부산=이가영, 서울=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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