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부활의 ‘돌격 리더십’…박근혜, 조용한 ‘만남의 정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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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도 정치권에서는 수많은 인물들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화려하게 등장한 자도 있었고 쓸쓸히 무대 뒷편으로 사라진 자도 있었다. 新주류와 만사兄통으로 시작해 '공방사우(攻防四友)'로 갈무리된 무자(戊子)년 정치권의 인물열전을 중앙SUNDAY가 정리했다.

무자(戊子)년 새해가 밝은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열흘밖에 남지 않았다. 기축(己丑)년 황소의 거친 콧숨이 바로 귓가에 들려올 것만 같은 요즘이다. 언제나 그렇듯 올 한 해 정치권에서도 수많은 인물들의 명멸(明滅)이 있었다. 화려하게 뜬 자가 있었고 나름대로 쏠쏠히 실리를 챙긴 자도 있었다. 쓸쓸히 퇴장한 자도, 와신상담하며 권토중래를 모색하는 자도, 올해보다 내년이 더 기대되는 자도 있었다. ‘정중동이란 이런 것’임을 몸소 보여준 자도 있었다. 2008년 정치권을 ‘者者者’로 정리해 봤다.

1년 새 주가가 급등한 자는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다. 정권 교체기에 이명박 정부 창업 일등공신들이 자의 반 타의 반 물러나면서 생긴 권력의 빈틈을 재빨리 낚아챘다. 본인 말마따나 “13년 검사 생활과 뒤이은 13년 정치 인생에서 처음 중심부에 진출하는 영광”을 누렸다. 한나라당 본류와는 사뭇 다른 정치적 시각과 튀는 행보 때문에 ‘한나라당의 노무현’으로 불리며 안팎의 견제도 많이 받았지만 ‘신주류’로서의 입지는 되레 공고해졌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이한구 국회 예결위원장 등과 잇따라 고성을 주고받아 눈총을 샀지만 정작 그는 “미국엔 버락 오바마, 한국엔 버럭 준표”라며 웃어넘겼다.

연말 예산전쟁에서 민주당을 누른 그는 내년엔 법무부 장관을 맡아 국정 경험을 쌓아보고 싶어 한다. 검찰 간부들도 홍 대표에게 줄 섰다는 얘기가 정가에 돌고 있다. 하지만 ‘법안전쟁’이 변수다. 여기서 무리수를 두면 2004년 ‘4대 입법’을 밀어붙였던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당시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도 이듬해 법무부 장관이 됐다. 이런 이유로 홍 대표의 내년 주가 전망은 A-지만 중장기 전망은 평가 유보다. 설화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 안정성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 점도 부담이다.

이상득 전 국회 부의장은 살아남은 자다. 이명박(MB) 정부 첫 조각과 총선 공천 과정에서 그가 실세 중의 실세였다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이재오·정두언과 삼두마차로 불렸던 그는 권력 헤게모니 쟁탈전에서 홀로 생존했다. 격변의 시대엔 살아남는 자가 진정한 강자다. 만사형통(萬事兄通)·영일대군에 형님 예산 논란까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늘 시선 집중의 대상이었지만 뚝심으로 ‘생존의 기술’에 대한 모범답안을 제시했다. 그래도 주가는 지금이 상한가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적 특수환경에서 대통령의 친형이란 자리는 언제라도 천형(天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형님주’에 대한 무리한 투자는 금물이란 신중론도 있다.

민주당의 뜬 자는 (네모)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올해 민주당의 스타는 누구냐’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글쎄…”라며 고개를 갸웃할 거다. 마땅히 꼽을 후보군조차 없다는 방증이다. 대신 올해의 야당 정치인 자리는 민주노동당에 넘겨줬다. 강기갑 당 대표 겸 원내대표다. 기다란 턱수염에 두루마기 입은 독특한 외모 탓에 기인으로 치부되기 십상이지만 기실 한나라당 의원들도 인정하는 내공파다. 촛불집회 때 주가가 치솟았다.

하지만 전망은 썩 좋지 않다.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 박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31일로 예정된 1심 선고 결과가 내년 주가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최고의 행운아 김형오
잭팟은 아니지만 짭짤하게 실속을 챙긴 자도 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올해의 정치 행운아상’ 수상자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등 여권 중진들이 줄줄이 낙마하면서 생각지도 않던 국회의장 자리에 올랐다. 특히 인생의 결정적 순간에, 그것도 국가 권력서열 2위 자리를 ‘어부지리’로 얻었으니 역시 운 좋은 사람은 당할 재간이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올 초엔 대통령직인수위 부위원장을 맡았을 만큼 능력도 인정받고 있다. 다만 최근 여야 격돌 과정에서 ‘공정성’에 생채기가 난 건 두고두고 짐이 될 전망이다.

민주당에서 그나마 은메달감을 고르라면 정세균 대표를 꼽을 수 있다. 열린우리당계와 386들의 지지를 받으며 제1야당의 구원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그는 특유의 ‘허허실실 리더십’으로 소리 소문 없이 당을 장악해 갔다. 문제는 그의 존재감이 대안부재론을 제1의 자양분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홀로서기 없이는 조만간 투자 매력을 모두 소진할 공산이 크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예상보다 선전한 자다. 대선 패배로 끝일 줄 알았건만 오뚝이처럼 재기해 이제는 캐스팅 보터로서 자리를 굳혔다. 초반엔 안 맞는 옷을 억지로 입은 듯 18석 야당 총재 자리가 어색해 보였지만 지금은 꽃놀이패의 짜릿함을 맘껏 즐기는 모양새다. 하지만 내년도 주가는 예측 불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연대부터 개헌이나 행정구역 개편을 고리로 한나라당과 손잡기까지(이른바 M&A) 주가 급등의 여지는 많지만 성사 가능성은 미지수다. 충청 맹주에 안주하다가 제2의 자민련으로 전락할 우려도 상존한다. 단독 교섭단체 성사 여부도 변수다.

세상만사 빛보다는 그림자가 더 무겁게 느껴지는 법. 과거의 영화를 뒤로한 채 절치부심·와신상담하며 권토중래를 모색하는 자도 많다.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대표적이다. MB 정권의 2인자 소리를 듣던 ‘초우량주’이자 최고 블루칩이 1년도 안 돼 이역만리에서 홀로 자전거나 타게 될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올해 가장 드라마틱한 자다. 핵심 측근은 “언제라도 돌아올 준비를 마친 상태”라고 전했다. 복귀가 임박하면서 논란은 날로 커져갈 조짐이다. 내년도 정치주식시장에서 거래가 가장 활발할 게 확실시된다. 주가 전망은 차치하고라도. ‘형님’ 철옹성에 돌을 던졌다가 이내 침잠 모드로 돌아선 정두언 의원과 박영준·곽승준·이주호 등 청와대 1기 멤버도 내년이 오길 기다리는 자들이다.

쓸쓸히 퇴장한 자도 있다. 정동영·손학규·김근태 전 의장과 이해찬 전 총리 등 민주당 중진들이다. 물론 그들의 정치 행로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고 몇몇은 내년 4월 재·보선 출마가 유력하지만 화려했던 옛날을 재현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는 가장 기대에 못 미친 자다. 깨끗한 정치, 새로운 진보를 내세우며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4·9 총선에서는 이재오 전 의원을 누르며 기염을 토했지만 상승 행진은 딱 거기까지였다.

돋보이는 샛별 김성식·박선숙
희망은 내년이 기대되는 자들의 몫이다. 초선 의원 중에는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과 민주당 박선숙 의원이 동료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서민경제론을 주창하는 김 의원은 한나라당의 이념적 건전성과 정책적 공평성을 위해 없어선 안될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브레이크 없는 여당은 국가적 재앙이란 점에서 그의 소신 행보에 기대를 거는 투자자들이 적잖다. 박 의원은 여야와 계파를 초월해 좋은 점수를 받는다는 게 강점이다. 사석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겸손하면서도 상임위장에서는 그 누구보다 매섭게 핵심을 파고드는 모습은 민주당의 작지만 의미 있는 부활 가능성을 엿보게 해준다.

이제 진짜 실력자를 얘기할 때가 됐다. 뭐니뭐니 해도 올 한 해 정치권 최고의 뉴스 메이커는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였다. 이들은 내년에도 단연 화제의 중심에 설 것이다. 하지만 모습은 전혀 다를 전망이다. 질풍노도의 돌격 리더십이 MB의 전략이라면 박 전 대표는 드러날 듯하면서도 드러나지 않는 정중동의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MB는 1년 새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10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뤘지만 이내 촛불에 흔들렸고 경제위기에 휘청거렸다. 상반기에는 유가가 치솟더니 하반기에는 환율과 주가가 춤췄다. 남북관계는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지도는 20%대에서 정체된 지 오래다. 그래도 청와대는 소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시행착오는 할 만큼 해봤으니 내년엔 잘하는 일만 남았다는 기대감이다. 올해처럼 이동관 대변인과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이 다시 선두에 서서 ‘MBism’을 전파할 것이다. 여기엔 당·정·청이 따로 없다. ‘사실상 일할 수 있는 마지막 해’인 내년에 올인할 게 분명한 상황에서 불도저 리더십의 2009년도 버전인 돌격 리더십에 ‘주시할 필요 있음’이란 평가의견이 붙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단 무모함과 무리수에 따른 후유증은 주가 하락을 막기 위해 꼭 피해야 할 경계 대상이다.

박 전 대표도 최근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일대일로, 어떤 때는 그룹으로 한나라당 의원들을 두루 만나고 있다. 월박(越朴)이니 복박(復朴)이니, 주이야박(晝李夜朴) 의원 100명 돌파니 하는 얘기가 나돈 것도 이 같은 그의 ‘만남 정치’에서 비롯됐다. 박 전 대표 측은 “식사나 한번 같이 하자는데 거절할 도리가 있느냐”며 일상의 연장임을 강조하지만 친이계를 긴장시키기엔 충분하고도 남는다. 한나라당 내에서 아직도 ‘박 대표’라 함은 박희태 현 대표가 아니라 박근혜 전 대표를 지칭하는 단어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올 한 해 ‘때를 낚는 정치’의 전형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정중동이란 기본 컨셉트는 내년에도 계속되겠지만 ‘동(動)’에 좀 더 방점이 찍힐 가능성이 있다. 2010년 지방선거는 그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강력한 유인이 될 것이다. 주가는 강보합세가 지속될 듯. 하지만 변수는 있다. MB가 손을 내밀었을 때 잡을 것이냐, 말 것이냐 선택의 문제가 그것이다.

올해 ‘者者者’ 선정은 자체적으로 이뤄졌지만 나름대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발품 팔며 의견을 모은 결과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렷다. 그런데 막판에 꼭 거론해야 할 네 분이 등장했다. 수포자(水砲者·물대포), 소분자(消粉者·소화기 분말), 전거자(電鋸者·전기톱), 퇴자(槌者·해머) 등 ‘공방사우(攻防四友)’가 그들이다. 무자년을 무자비하게 저물게 한 장본인들. 덕분에 지난주 정치주식시장엔 사이드카가 수차례 발동됐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일반 증시와 마찬가지로 정치 증시도 아직 바닥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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