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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파지 말고 교육·복지에 나랏돈 써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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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요즘 이준구(59·사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홈페이지(http://jkl123.com)가 화제다. 이곳에 올리는 이 교수의 글은 인터넷을 타고 무섭게 전파되곤 한다. 2006년 여름 글을 올리기 시작한 그의 홈페이지엔 조회 수가 1만 건이 넘는 글이 여럿이다. 특히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대운하 사업을 비판하거나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옹호하는 글은 사회적 파장이 컸다. 그는 중앙SUNDAY와 인터뷰는 거절했지만 최근 현안에 대해 부분적이나마 견해를 밝혔다. 이를 토대로 이 교수 주변 인사와 홈페이지를 통해 ‘경제학자 이준구’를 조명해 봤다.
 
‘대운하는 안 한다’고 밝혀라

“대운하는 하지 않겠다는 그 말 한마디를 하기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지난주 정부가 발표한 4대 강 정비사업에 대한 이 교수의 반응이다. 한국재정학회장을 지낸 그는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대운하 사업을 강력하게 비판해 왔다. 서울대 교수들의 대운하 반대 서명운동도 그가 인터넷에 올린 글이 계기가 됐다. 이 교수는 정부가 4대 강 정비사업을 내놓은 것은 대운하 사업의 미련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물론 이 교수 역시 요즘 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어떤 방법으로든 부양책을 펴는 게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토목공사가 부양책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어느 정도 수용한다. 하지만 그는 정부 지출의 ‘우선순위’가 잘못됐다고 본다. 토목공사를 중시하는 케케묵은 구시대적 발상을 접고, 교육·사회복지·연구개발(R&D)·정보화 사업 등의 순으로 우선순위를 정해 정부 돈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경기 부양 효과를 내면서 삶의 질 향상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토목공사의 경우 불필요한 곳에 재정을 쓸 위험이 있지만 교육이나 사회복지 분야의 투자는 그 자체가 바람직하고 어차피 해야 할 투자라는 점에서 훨씬 참신한 방법입니다.”

4대 강 정비사업의 또 다른 문제는 경기를 띄우는 효과가 생각만큼 빠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기존에 투자해 왔던 계속사업에 비해 4대 강 정비사업 같은 신규사업은 기획 단계부터 실제로 투자가 집행될 때까지 ‘회임기간’이 길다. 이 교수는 “신규사업보다 계속사업에 투자하는 게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빠르다는 데 대부분 재정학자가 동의한다”고 말했다.

감세와 재정지출 중 정책의 무게중심을 어느 쪽에 둬야 할지를 둘러싼 최근의 논란과 관련해선 “정답은 없지만 재정을 투입하는 게 감세보다 효과가 빠르다”고 했다. 이 교수는 “감세가 단기적 경기 부양책이 될 수는 있지만, 기업 투자를 늘려 장기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는 공급 중시 경제학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급 중시 경제학은 한때의 유행일 뿐이며, 최신 경제학 교과서에선 비중 있게 다루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노무현 정부 후반부 들어 본격적으로 사회적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동시대를 사는 많은 사람이 진리처럼 떠받들고 있는 생각이 반드시 옳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다. 다른 의견이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

그는 주로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날 선 비판을 날렸다. 그런 그를 ‘진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심지어 ‘좌빨(좌파 빨갱이란 뜻의 인터넷 속어)’ 아니냐는 철없는 소리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중도적 경제학자라고 생각한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1980년대 대학가에서 그는 보수적인 교수로 통했다. 경제 현안을 놓고 강의실에서 운동권 학생들과 ‘끝장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미시경제학 연구자는 보수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가치 판단을 배제하고 순수한 경제논리로 이론체계가 구성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92년 첫 저작인 『소득 분배의 이론과 현실』을 본 동료 교수들은 ‘생각보다 래디컬(급진적)하다’고 하더라. 하지만 나는 사회주의(Socialism)의 ‘S’자도 모른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요즘 세상이 너무 오른쪽으로 치우쳐 간 것뿐이다.”

‘대안 없는 비판’ 아니냐는 지적엔 동의하지 않는다. 비판하는 사람에게 대안까지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대안을 만드는 책임은 정책 담당자에게 있지 비판을 하는 사람에게 있지 않다. 정책 담당자가 내놓은 계획에 문제점이 있으면 그것을 지적하는 것만으로 족하다. 대안 없이 비판하지 말라는 말은 상대방의 입을 막아 버리려는 불순한 의도가 그 밑에 깔려 있다.”

『미시경제학』 수십만 권 팔려

이 교수는 이론을 정리하고 전달하는 데 자신이 비교우위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교과서를 집중적으로 썼다. 『미시경제학』은 수십만 권이 팔렸고, 『경제학원론』도 10만 권 가까이 팔렸다.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생치고 그의 책을 안 본 이는 거의 없을 정도다. 요즘엔 행태경제학 교양서를 쓰고 있다. 그는 원래 글을 잘 썼을까. 사실 이 교수는 고교나 대학 시절에 한 번도 글쓰기로 상을 탄 적이 없다. “나이를 먹으면서 글쓰기에 눈을 떴을 뿐이다. 독자 입장에서 글을 쓰려고 노력했더니 좋은 반응을 얻은 것 같다.”


이 교수는 요즘 ‘행복의 경제학’에 관심이 많다. 이제 성장률이나 국민소득 자체를 경제정책의 목표로 삼을 때는 지났다고 믿는다. 소득 증가가 꼭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라는 ‘이스터린 역설(Easterlin Paradox)’을 얘기하기도 했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그는 제자들에게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의 행복론을 설파한다. 내용인즉슨 ▶중요한 선택에만 관심을 집중하라 ▶선택 가능성이 너무 많으면 합리적 선택이 힘들다 ▶웬만하면 만족하라 ▶기회비용의 기회비용을 생각하라(너무 많이 따지면 만족감을 얻기 힘들다) ▶일단 한 일은 후회하지 마라 등이다. 이런 행복의 원칙은 ‘많을수록 더 좋다’는 경제학의 기본적 가정과 배치되는 것이다.
 
규칙적 생활로 휴대전화 없이 살아

실제로 그는 요즘 행복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번 학기에 18년 만에 연구교수를 맡아 강의 부담 없이 지냈다. 평소에 술은 못 하고 담배는 안 하며, 외부 용역도 거의 안 한다. 휴대전화는 없다. 경제학부장 등 보직을 맡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보직교수 시절 휴대전화가 없어 주변에서 연락을 못 해 불편해하지 않았을까.

그는 “내 생활이 워낙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이 별로 불편해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연구실에 오전 9시30분 출근해 오후 6시30분 퇴근한다. 서초동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후 7시15분 안팎이다. 국내에서도 인기 높았던 일본 만화 천재 유 교수의 생활에 나오는 경제학 교수 유택을 연상시킬 정도다. 만화에서 유 교수는 항상 시간을 정확하게 재고 다닌다.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98% 이상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내 휴대전화가 없다고 아내가 불평하지 않는다.”
76년 결혼한 이래 일요일 오전엔 항상 아내와 장을 본다. 예외는 없다. 그는 “아마 1560번 이상 쇼핑카트를 밀었을 것”이라고 했다. 일요일 가족 점심은 그가 책임진다. 외식도 가끔 하지만 주로 수제비·김밥 같은 음식을 직접 만든다.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에 다른 일이 없으면 연구실로 나온다.

최근 그가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 다시 화제가 됐다. 종부세를 강력하게 옹호했던 그가 종부세 대상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그는 수백만원의 종부세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수는 롤즈의 ‘무지의 장막’이라는 말을 인용해 어떤 이슈에 대해 불편부당하고 공정한 태도를 취하려면 자신이 마치 장막에 가려진 것처럼 느껴야 한다고 했다. 종부세 부담 여부를 떠나 종부세 문제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부유한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게 일종의 명예라는 올바른 목소리가 많이 나왔어도 종부세가 이렇게 무력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서경호 기자


이준구 교수의 사회적 발언과 이론적 근거

4대 강 정비사업 반대

-재정 지출의 우선순위는 교육·사회복지·연구개발·정보화 사업 순으로
-4대 강 정비사업이 나온 것은 대운하 사업에 대한 정부의 미련 때문

대운하 사업 반대

-편익이 과다 계산되는 등 경제적 타당성 평가에 잘못
-민자 유치를 한다고 해도 환경파괴 등 사회적 비용은 별개 문제

감세정책은 사이비

-‘세율을 내리면 경제가 활성화돼 세입이 오히려 늘어난다(래퍼곡선)’는 공급 중시 경제학은 한때 반짝 유행했던 사이비 이론
-‘법인세율 인하가 투자 증가를 가져왔다’는 믿을 만한 분석결과도 못 봐
-지금처럼 경제 시스템 자체가 불안정할 때는 감세 효과 없어

종합부동산세는 옳다

-현행 재산세제에선 전국 각지에 여러 채 주택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중과세를 할 방법이 없어
-이중과세라는 비판 근거 부족. 필요에 따라 가산세(surtax) 얼마든지 부과할 수 있어
-종부세는 정책 당국이 민간 부문의 행위를 바람직하게 이끌어가기 위한 교정 과세
-종부세 무력화로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부담 증가

교통사고를 쌍방과실로 많이 처리할수록 보험사에 유리

-잘잘못을 확실하게 가리지 않으면 운전 습관이 좋은 운전자가 나쁜 운전자에게 보조금을 주는 꼴
-소비자만 보험사 할증으로 불이익

종합부동산세는 세대별 합산 과세가 맞아

-부동산과 관련된 의사결정 단위가 세대인 만큼 과세의 단위도 세대가 돼야
-공평과세의 대원칙은 수평성과 공평성(똑같은 경제적 능력자에게 똑같이 조세 부담 지워야)
-공동명의 등기 여부는 경제적 능력과 아무 상관 없어

공무원 승용차 홀짝제는 과격한 규제

-만만한 공무원을 홀짝제 쇼의 엑스트라로 동원한 것

본고사 금지와 고교등급제 금지는 옳다

-본고사나 고교등급제로 개별 대학이 우수 학생을 뽑을 수 있지만 사회 전체 관점에선 어차피 영합(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에 효율성 없어

(영어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는) 영어 공교육 확대 반대

-편익만 말하고 이에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비용에 대한 얘기는 없어
-비교실험이 없어 가장 효과적이라는 근거 희박
-오히려 사교육 수요를 늘리고 양극화를 심화시킬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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