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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81. 체육회장 사퇴 권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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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1996년 부산아시안게임 주경기장 기공식에 참석한 필자(오른쪽에서 셋째). 대통령의 사퇴 권고에 따라 부산조직 위원장 자리는 즉시 내놨다.

 2001년 7월 모스크바 IOC 총회를 마치고 귀국했다. 허탈했다. 나의 우군이라고 생각했던 사마란치가 노골적으로 로게의 선거운동을 했다는 사실에 더욱 힘이 빠졌다. 솔트레이크 스캔들이 터졌을 때 나를 표적으로 삼았던 미국 언론은 모스크바 총회에서는 일제히 나를 지지하고 성원해줬다. LA 타임스, USA 투데이, 뉴욕 타임스 등은 나의 패배를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일본 아사히 신문도 ‘스포츠 괴물의 안타까운 낙선’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선거 후 한승수 외무부 장관 집에서 만찬이 열렸는데 거기에서 미국 국무부 고위인사를 만났다. 그는 “이번에는 아시아에서 IOC 위원장이 나올 줄 알았는데 안 됐다”며 “미국은 (도와줄) 표가 없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아니타 디 프란츠 위원도 위원장 후보였기 때문이다.

8월 중순께 김대중 대통령이 불렀다. IOC 위원장 선거에서 수고했다고 격려해주려나 생각하면서 청와대에 들어갔다.

그런데 전혀 예상 밖의 말이 나왔다. “지금 하는 일이 너무 많으니 국회에만 전념하고 대한체육회장과 부산아시안게임조직위원장은 사퇴하는 게 어떠냐”는 권고였다. “부산아시안게임은 북한도 오지 않을 거고, (그 직전에 열리는) 한·일 월드컵에 눌려서 어려운 상황이 될 거다. 그리고 대한체육회장도 너무 오래 해서 말들이 많다”는 것이다.

체육회장 임기는 아직 3년이나 남아 있고, 솔트레이크 겨울올림픽이 눈앞에 닥쳐온 시점이었다. 격려는 못해줄망정 그런 얘기를 들으니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좋게 해석하기로 마음먹고 부산아시안게임조직위원장은 내놓겠다고 했다.

“부산아시안게임은 5년간 준비했고, 북한도 참가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바로 그만둬도 아무 탈 없을 겁니다.”

내가 그만두겠다고 하자 부산조직위에서는 “그럴 수 없다”며 만류했다. 내가 끝까지 뿌리치자 부산에서는 대사를 앞두고 위원장이 그만둔다며 욕을 많이 했다. 당시 조직위 기획단장이었던 허남식 부산시장이 2006년에 부산 IOC 콩그레스 유치를 도와달라고 찾아왔을 때 조직위원장을 사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더니 “아,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대한체육회장 자리는 달랐다. “솔트레이크 올림픽이 반년 앞으로 다가왔는데 제가 지금 손을 떼면 무너질 겁니다. 그만두는 시기는 저에게 맡겨주십시오”라고 했다.

누구와 상의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체육회에 얘기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직접 얘기할 정도면 이미 방향은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솔트레이크 올림픽이 끝나면 사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서 한광옥 비서실장이 전화를 했다. “이야기 잘 되셨다지요. 사퇴 날짜를 언론에 밝히시지요”라고 한다. “그걸 공공연하게 밝히면 레임덕이 될 텐데 (사퇴) 타이밍은 나에게 맡기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김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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