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하고 군대 가는 여대생 만들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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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교내 풋살(실내축구) 경기에 교무위원 대표팀으로 참가한 한영실 총장이 패스를 기다리고 있다.

한영실 숙명여대 총장이 취임한지 100일을 맞는다. 한 총장과 만나 앞으로 대학 운영을 어떻게 해나갈지, 실행 플랜을 들어봤다. 그는 "여성의 핸디캡은 책임감 부족"이라며 "축구하고 군대 가는 여대생을 만들겠다"고 말한다. 다음은 중앙SUNDY 기사 전문.

숙명여대 한영실(51) 총장. 그가 지닌 이미지의 대부분은 TV에서 형성된 것이다. 한 방송국의 건강 프로그램(비타민 ‘위대한 밥상’)에 고정 출연하면서 ‘스타 교수’가 됐다. 하지만 브라운관 속 이미지와 실제 모습은 다를 수 있는 법. 9일로 총장 취임 100일을 맞는 그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서울 청파동 숙명여대 총장실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밝은 미소와 함께 자리에 앉는 한 총장의 손에는 11월 30일자 중앙SUNDAY가 쥐어져 있었다. 한 총장은 스페셜리포트 ‘융합산업의 길’이 게재된 20면을 펼쳐 보이며 “내 생각과 너무 같아서 놀랐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내가 숙명여대 17대 총장에 취임하면서 ‘생각하는 힘을 가진 창조적 인간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세운 것도 융합정신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식품영양학 전공에다 국내 박사예요. 그런 사람이 하버드 나온 교수보다 더 많은 베스트셀러를 냈어요. 그것도 몇십만 부씩…. 고현정(탤런트)도 아닌데, 이 나이에 시청률을 30%까지 끌어올렸고요. 회장님, 사장님,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 암환자… 누가 내 강의를 듣든 다들 몰입하세요. 사람들이 그 비결이 뭐냐고 묻는데, 나는 독서에서 나온 생각하는 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총장은 “브랜드와 스토리를 생각하는 힘이 있으면 엿장수도 부자가 될 수 있지만, 생각하는 힘이 없으면 대학을 나와도 아무 데도 쓸 곳이 없는 사람이 되는 시대”라고 단언했다. 확고한 신념과 자부심이 느껴졌다. 융합시대에 맞게 인문적 소양을 키우겠다는 그의 목표를 대학 교육 시스템에 어떻게 접목시킬 수 있을까.

“문제에 기반을 둔 교육을 시작할 겁니다. 교수는 강의하고, 학생은 리포트를 제출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발표하고 교수와 함께 토론해서 해답을 찾는 방식이지요. 1~2학년 때 교양과목에서 고전 50권을 의무적으로 읽도록 할 겁니다. 예를 들어 이번 가을 학기 교양과목에 ‘키워드로 읽는 오늘’이란 강좌를 만들었는데요. 자연과학·인문학·법학 등 각 분야 교수가 돌아가며 강의를 합니다. 여러 각도에서 사회적 이슈를 풀어가다 보면 중앙SUNDAY에서 제시한 ‘다빈치형 인재’가 나오지 않을까요.”

입사 땐 우수한데 임원 못 되는 이유는

요즘 대학가에서는 ‘여대 위기론’이 일고 있다. 여학생들이 여대 진학을 기피하는 분위기다. 미국에서도 명문 여대 그룹인 ‘세븐 시스터스(Seven Sisters)’가 다섯 개로 줄었다.

“우리 학교가 여자 대학인 것은 맞아요.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대한민국 여자가 아니라 세계 속의 인간을 가르치는 총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남자와 여자를 구분할 필요가 있었어요. 노동력 중심의 사회에서 근력이 강한 남성이 존중받을 수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앞으로 열리는 융합시대에선 달라요. 여자라고 해서 남자보다 못할 게 없어요.”

-여자가 아닌 인간을 가르친다는 뜻은.

“총장 취임 후 우리 학교 멘토를 맡고 있는 기업 최고경영자(CEO) 20명과 돌아가며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여성들을 사원으로 쓸 때 무엇이 문제냐. 솔직하게 말해 달라’고 했어요. 여대생이 취업할 때 핸디캡이 뭔지 알아야 하잖아요. CEO들은 ‘책임감이 좀 떨어지고 이기적’이라고 하더군요. 한마디로 조직을 위해 몸을 던지지 않는다는 거죠. 남자들은 ‘부하를 위해 내가 죽겠다’고 달려드는데, 그러니까 밑에서 ‘보스’ 하고 따라가는데, 여자들은 ‘난 몰라요’ 하니까 부하들이 여자 상사 모시기 싫어하고, 힘들어한다는 겁니다. 신입사원일 때는 우수한데 이사급, 임원급으로 올라가는 확률이 낮다는 것, 그 이유가 뭐냐? 바로 팀워크 부족이라는 겁니다.”

-해결책을 찾았나요.

“권리는 똑같이 요구하면서도 ‘난 여자니까’ 하면서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 이것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해결책도 역시 교육밖에는 없더군요. ‘뭐든지 훈련이다. 방위보다 특수부대가 센 것은 훈련의 강도가 세서 그런 것이다. 우리 아이들을 팔기(취업시키기) 위해선 특수부대 요원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OK, 남자가 여자보다 더 훈련을 받은 것은 축구하고 군대 가는 것뿐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교수들에게 ‘축구 하고 군대 가는 여대생 만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교수들이 농담하는 줄 알고 웃더군요. 나는 진담인데….

-축구는 할 수 있겠지만 군대가 가능할까요.

“군대도 여러 종류가 있어요. 방위, 아니 예비군이라도 시킬 겁니다. 나는 할 겁니다. (기자가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짓자) 그건 퀘스천(의문)으로 남겨둡시다. 아직은 ‘프로젝트 큐(Q)’예요. 기대하세요. 축구는 이미 시작했어요. 올해로 교내 풋살(실내축구) 경기를 시작한 지 2년째인데, 지난달 경기에는 나도 교무위원 대표팀으로 뛰었어요. 학생들은 우리가 슬슬 할 줄 알았나 본데, 나는 이겨보겠다고 악착같이 뛰었어요. 아이들과 몸싸움하다가 ‘저리 가’ 하고 악을 쓰기도 했지요. 결국 우리가 1대0으로 이겼어요.”

산전·산후 휴가 하루도 안 써

한 총장의 ‘악바리 근성’은 유명하다. 두 자녀를 낳았을 때 산전·산후 휴가를 하루도 쓰지 않았다. 둘째 딸을 낳았을 때는 1월 9일 출산 후 3월 2일 정상 출근했다. 한 총장은 “내 얼굴이 부어서 엉망인 것을 보고 교수들이 일주일만 더 쉬라고 했지만, 수업을 다 마치고 퇴근했다”고 한다.

“내 사전에는 결석, 휴강, 결강이란 단어가 없어요. 아이들이 한창 자랄 때는 오후 6시 집에 가서 저녁 먹이고 숙제 봐주고, 다시 밤 9시 학교에 갔습니다. 그리고 새벽 2시에 퇴근했지요. 다시 6시30분 기상…. 그렇게 하루에 4시간 반 자는 생활을 하니까 책을 10권, 11권씩 쓸 수 있었던 겁니다. 옛날 사진들 보면 머리를 뒤로 묶은 것밖에 없어요. 마흔다섯까지 드라이를 해본 적이 없어요. 머리카락 한 오라기 빗는 시간도 아까워…. 나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워킹 맘’으로 대학 총장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기 때문일까. 그의 얼굴이 살며시 달아올랐다.

-숙대 이미지는 차분하고, 동양적인 것 아닌가요.

“물론 남을 배려하고, 사려 깊은 품성은 그대로 가져가야죠.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 이미지도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 시대는 저고리 옷고름 잡고, 별당에 앉아 있는 귀부인을 원하지 않아요. 나가서 활동하고, 세상을 바꾸는 여성이 필요합니다.”

-라이벌 대학은 어디라고 생각하는지요.

“(웃으며) 이화여대란 대답을 원할 텐데, 나는 이대가 좋은 파트너라고 생각해요. 이대가 많이, 많이 앞서 갔으면 좋겠어요. 이대를 견제하고, 교수 뺏어오고, 좋은 프로그램 베껴서 장사하고, 그러면 소경이 자기 닭 잡아먹는 거예요. 대학 운영을 백화점식, 뷔페식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서로 다른 것을 해야 해요. 자기 특성화를 해야 해요. 그래야 우리나라도 잘됩니다.”

한 총장은 거듭해서 융합과 변화, 그리고 특성화를 강조했다. 그의 실험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올 것이란 예감을 안고 총장실을 나섰다.

권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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