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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코가 석 자 … 한국 돌아볼 겨를 없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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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피어스 리더랜드

주가 불안, 원-달러 환율 급등, 3월 위기설…. 국내 증시와 외환시장이 여전히 불안하다. 1997년 외환위기 상흔인가. 외국인 투자자의 작은 움직임에도 파장이 거세게 일고 있다. 시장 참여자와 경제정책 담당자들이 ‘우리가 무엇을 잘못해 외국인이 떠나는 건가’ 하며 자책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중앙SUNDAY가 최근 방한한 JP모건자산운용의 아시아·태평양지역 최고운용책임자(CIO) 피어스 리더랜드를 인터뷰했다.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파는 이유를 들어 보기 위해서다. 그는 30년 동안 동아시아 전문 펀드매니저로 일해 왔다. 외국인투자자와 아시아 시장을 잇는 가교다. 외국인이 한국 등 아시아 시장을 보는 시각을 소상히 알고 있다.

-외국인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을 연거푸 팔아 치우고 있다. 왜 그런 것 같은가.
“많은 외국인투자자와 이야기하다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됐다. 그들의 자금 사정이 말이 아니다. 그들은 개별 국가나 지역 요인들을 분석해 매매 여부를 결정할 만큼 여유롭지 않다.”

-그렇게 다급한가.
“상상 이상이라는 느낌이었다. 미국·유럽의 헤지펀드나 뮤추얼펀드는 (거품 시기에 사들인) 부동산 자산을 처분하지 못하고 있다. 값이 너무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매매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다. 반면 투자자의 환매 요구는 계속 들어오고 있다. 어떻게든 현찰을 마련해 돌려줘야 한다. 펀드들이 증시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러시아 등 일부 증시는 폭락 순간 거래가 중단됐지만 대부분 나라의 증시는 폭락 속에서도 매매가 이뤄지고 있다.”

-유독 한국 주식을 많이 팔아 치우고 있는 듯한데.
“펀드가 궁지에 몰리거나 당장 현금이 필요하면 조금이라도 수익을 내는 시장을 선택한다. 한국 등 아시아 증시가 현재 그런 곳이다. 장기 투자 측면에서 보면 한국 등의 주식은 팔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펀드들이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엄청나게 손해 봤다. 살아남기 위해 일단 한국 등의 주식을 팔아 현찰을 마련하고 있다.”

리더랜드가 말한 외국인 매도는 ‘금융위기→자산가격 폭락→환매 급증→펀드의 자산 처분·현금화→자산가격 추가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한 고리다. 이런 악순환이 시작되면 펀드들은 개별 국가의 경제성장률 등을 따질 여유가 없다. 전체 상황이 너무 나쁘기 때문에 전망이 좋은 나라의 주식마저 팔 수밖에 없다.

-채권형 펀드 등 금융위기 타격을 덜 받은 외국인 자금도 한국에서 이탈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이 공적자금을 투입해 대형 금융회사를 사실상 국유화했다. 미 정부가 사실상 ‘금융 지주회사’로 바뀌었다. 아시아 국가들은 아직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런데 위험을 회피하는 투자자들이 안전한 자산을 찾아 한국 등에서 자금을 빼내 미국이나 유럽 정부가 지급을 보증한 은행에 맡기고 있다. 그 여파로 아시아 지역 회사채가 타격을 받고 있다. 따라서 외국인이 한국을 비판적으로 보고 떠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외국인들이 지적하는 한국 경제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한국 외환보유액이 시중은행들의 외채 등을 감당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게 외국인의 일반적 시각이다. 원화 가치가 떨어져 시중은행이 외국에서 빌린 돈을 갚기 위해 더 많은 원화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은행의 부담이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미국과 유럽의 경기침체 때문에 한국 수출기업이 타격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장기적으로 미래 성장동력이 분명하지 않은 것도 문제로 꼽는다.”

-언제쯤 외국인들이 한국 주식이나 채권을 다시 사들일 것 같은가.
“언제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원인인 글로벌 위기가 진정돼야 한다. 요즘 한국 등의 주식 가치가 아주 낮아져 다시 사들일 만하다. 하지만 돈이 없어 사들이지 못하고 있다.”

-일반투자자들은 언제쯤 주식을 사야 할까.
“한국 등 글로벌 주가는 앞으로 1년 정도 불안하게 오르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때 주식 매수 여부는 거시경제나 시장 상황보다는 투자자 자신의 경제적 사정에 맞춰 결정해야 한다. 투자자가 젊고 월급이 많으며 과감하다면 지금 주식을 사도 된다. 하지만 나이가 많고 정기적 수입이 없다면 이런 불안한 증시와 거리를 둬야 한다.”

-많은 사람이 이번 위기 이후 (주식이나 채권) 투자보다 은행 저축에 더 기댈 것이라는 전망이 있는데.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투자를 선택한 쪽도 아주 보수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이는 자산운용 업계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 다행히 요즘 자산운용사들은 다양한 투자 수단을 제공하고 있다. 투자자의 성향과 희망에 따라 저축만큼 안전한 펀드에서 고위험 펀드까지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

리더랜드는 일선 펀드매니저로 일하면서 중국과 한국·일본·대만을 주로 담당했다. 화제를 바꿔 요즘 뜨거운 이슈인 중국의 내년 성장 전망을 물었다.

“낙관적인 사람들은 8% 정도, 비관적인 사람은 6% 정도 예측하고 있다. 나는 이코노미스트가 아니기 때문에 내년 중국 성장률을 예측할 입장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중국 정부가 발표한 경제성장률이 실제보다 축소됐다고 생각한다.”

-(순간 그의 말을 막으며) 미국과 유럽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성장률을 부풀리고 있다고 보는데.
“중국에는 수많은 개인 사업장이 있다. 정부의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공식적으론 실업자이면서도 실제로 사업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현재 중국 경제의 활력이나 성장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내년 성장률이 낮게 나오더라도 중국 경제는 그 이상 활력을 보일 것이라고 봐야 한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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