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룩한 촌로 아닌 머리 회전 빠른 前 세무공무원”

중앙일보

입력 2008.12.07 03:39

업데이트 2008.12.07 21:01

'봉하대군' 노건평씨의 구속으로 대통령 친인척 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참여정부는 노건평씨 관리를 위해 경찰 출신의 전담요원을 두고, 명절 때는 봉하마을 어귀에 경찰관을 배치하기까지 했지만 그의 수상한 행보를 사전에 차단하지 못했다. 중앙선데이는 전 청와대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노무현 정권 출범 초기부터 심한 단속과 견제로 사사건건 부딪혔던 노씨와 청와대 민정팀의 신경전을 취재했다. 청와대가 왜 노씨 관리에 실패했는지 그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기로 하자. 다음은 기사 전문.

세종증권 매각 비리에 연루돼 구속영장이 발부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가 4일 저녁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서울구치소로 향하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최승식 기자
4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이자 ‘봉하대군’으로 불리던 노건평(66)씨가 검찰에 구속됐다.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로비에 개입하고 그 대가로 억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가 구속 사유다. 부패 척결과 철저한 친인척 관리를 공언해 온 노무현 정부의 도덕성에 큰 흠집을 남기게 됐다. 특히 형이 대형 비리에 연루된 혐의를 받게 됨으로써 노 전 대통령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됐다. 청와대 민정팀은 대통령의 형을 도대체 어떻게 관리했기에 대형 비리를 막지 못했던 걸까. 당시 청와대 사정 라인에 있던 인사들을 만나 궁금증을 풀어 봤다.

건평씨가 구속되던 날 전 청와대 민정팀 관계자 A씨를 만났다. 그는 “노씨가 세종증권 인수 과정에서 사람을 소개하는 정도의 개입은 있었던 것 같은데 엄청난 거액을 받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사람 일은 알 수가 없어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기자=“건평씨를 청와대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 아니냐.”
A씨=“이전 정권에 비해 친인척 관리를 더 엄격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대통령 역시 건평씨 문제에 무척 신경을 썼다. 하지만 두 발 달린 짐승인데… 매일 누구를 만나는지, 누구와 통화하는지 청와대에서 완벽하게 파악할 수는 없었다.”

정권 초기부터 인사청탁 연류

A씨를 포함해 민정팀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정권 내내 건평씨는 청와대 민정팀과 대립했다. 청와대의 감시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동생인 대통령과 민정팀을 압박했다. 그리고 그 압박은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했다. 건평씨는 정권 초기부터 구설에 올랐다. 2003년 2월 말 국세청장 인사 개입설을 취재하러 온 한 시사주간지 기자에게 “국세청장 인사에 개입한 적은 없다”면서도 “능력이나 조직 장악력으로 봤을 때 K씨가 차기 청장이 되는 것이 순리에 맞다. 동생에게도 K씨가 매우 유능하다는 얘기를 한 일은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보도돼 파문이 일자 노 전 대통령은 문재인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진상 조사를 지시했다. 문 수석은 이호철 민정1비서관과 함께 봉하 마을을 방문했다. 문 수석은 대통령 친형으로서의 적절한 처신을 당부하는 대통령의 뜻을 전달하는 한편 건평씨에게 인사청탁을 한 유력 인사의 이력서와 민원서류를 수거해 왔다.

당시 상황을 전 청와대 민정팀 관계자 B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비서관이나 행정관급이 아닌 수석이 직접 봉하 마을을 찾을 사안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상자가 대통령의 친형인 데다 대통령의 특별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문 수석이 내려간 것이다. 예우 차원도 있지만 친인척 관련 비리를 경계하는 대통령의 의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건평씨는 자신이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조사까지 당해야 하느냐며 불만스러워 했다.”

민정팀의 조사 결과 국세청장 후보 물망에 오른 두 명이 건평씨에게 로비를 하고 다니는 정황이 포착됐다. 이를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이후 두 인사는 후보에서 배제됐다. 대통령 친형에게 청탁을 하더라도 성사는커녕 걸리면 본전도 못 찾는다는 경고였다. 하지만 이후에도 노씨를 둘러싼 구설은 계속 터져나왔다.

명절 때 마을 어귀에 경찰 배치

2003년 9월 추석을 앞두고 건평씨가 사장 연임을 부탁하기 위해 찾아온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에게서 3000만원을 받았다가 돌려준 사실이 드러나 이듬해 3월 검찰에 불구속 기소됐다. 이 일로 노 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유감을 표명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노 전 대통령은 “명문대를 졸업한 엘리트가 뭐하러 촌사람을 찾아가 굽실거리느냐”며 남 시장을 비난했다. 남 사장은 심리적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했다. 전 청와대 민정팀 관계자 B씨의 말을 들어 보자.

“대통령은 건평 형님이 인사청탁 문제에 휘말려 검찰에 기소되는 일까지 벌어지자 친인척 관리를 더 치밀하게 하도록 지시했다. 건평씨가 추석 선물로 생각하고 돈을 받았다고 해명해 이후부터 매년 명절을 앞두고 아예 청와대 민정팀 관계자를 봉하 마을에 파견했다. 관할 경찰서에 지시해 마을 어귀에 경찰을 배치하기도 했다. 누가 어떤 선물을 들고 노씨를 찾는지 일일이 체크하기 위해서였다.”

이와 관련, 전 청와대 민정팀 A씨는 “50대로 연배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경찰 출신 인사를 건평씨의 전담 마크맨으로 붙여 놓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담 마크맨이 있다고 해서 건평씨 관리가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건평씨는 민정팀에서 찾아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건평씨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청와대의 심한 단속 때문에 사생활을 침해당하고 정상적 사업도 하지 못한다”며 민정팀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직접 대통령에게 항의 전화를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건평씨 외에도 누님으로부터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훼방 놓느냐. 네가 먹여 살릴 것이냐”는 전화를 받기도 했다.

2005년 3월 건평씨는 아들 상욱씨의 결혼 때 축의금 문제로 민정팀과 다시 갈등을 빚었다. 민정팀은 구설에 오를 것을 우려해 결혼식장을 부산의 한 특급호텔에서 검소한 곳으로 옮기고 청첩장을 돌리지 말아야 한다고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축의금이나 화환도 받지 못하게 건의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에 건평씨는 “나도 동네 사람 아들딸 결혼할 때 십시일반 도왔는데 대통령이 동생이라고 그것도 못 하게 하느냐”고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고 한다.

건평씨가 끊임없이 민정팀을 압박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형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미묘한 심리가 작용했다는 주장도 있다. 노무현 정부의 한 사정당국 관계자의 증언이다.

“대통령에게 건평씨는 단순한 형이 아니었다. 대통령을 키워 주고 공부를 시켜 주었다. 아버지 역할을 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대통령은 건평씨에게 직접적이고 강도 높은 경고를 보내지는 않았다.”

MB 친인척도 유혹 많을 것

경찰 출신으로 청와대 민정팀에 파견됐던 한 인사는 건평씨를 이렇게 평했다. “겉으로는 어수룩한 촌로로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건평씨는 세무공무원으로 10년 동안 일한 사람이다. 뇌물수수죄로 구속돼 공직에서 물러났다. 머리 회전이 빠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드러내지 않는 스타일이다. 도통 행적과 속마음을 파악하기 어려운 상대였다.” 그는 또 “건평씨 주변을 감시해야 할 경찰이 오히려 눈도장을 찍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경찰 간부들이 건평씨와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경남으로 전출되길 원한다는 소문까지 떠돌아 다녔다”고 말했다.

청와대 민정팀의 감시 기능이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다. 전 청와대 민정팀에서 근무했던 한 사정 관계자의 증언이다. “박연차 회장이 세종증권 주식 거래로 상당한 이익을 챙겼고 휴켐스 인수 과정에도 문제가 있다는 첩보가 정보기관을 통해 민정팀에 보고됐다. 조사를 했지만 관련자들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명하고, 의혹을 입증할 증거를 잡지 못했다.”

전 청와대 민정팀 A씨는 이렇게 말했다. “외부에서는 청와대 민정팀이 만능인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하지만 수사권도, 계좌 추적권도 없다. 밖에서 이상한 소문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때마다 인적 네트워크만 가동해 소문의 진위를 일일이 파악하기 어려웠다. 노 전 대통령 친인척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화려한 이력을 가진 이명박 대통령의 친인척들에게도 끊임없이 유혹의 손길이 뻗치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청와대 민정팀도 이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관리한다는 것은 구조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A씨는 “친인척 관리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5년 후 또 다시 친인척 관련 비리가 터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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