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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의 컬처코드] ‘스친소’를 보며 무작정 낄낄댈 수 없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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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TV는 낭만적 연애담의 거대한 배출구입니다. 요즘은 연애전도사를 자처하는 느낌입니다. 오락프로에도 연애 소재가 봇물입니다. 매칭 프로(짝짓기라는 말이 영 이상해서 영어 좀 하겠습니다)에서 1대 1 맞선, 동거,가상 결혼까지 다양합니다. 대상도 일반인에서 연예인으로, 미혼에서 재혼희망자까지 확대중이구요. 그만큼 이 시대가 연애의 환상을 간절히 원한다는 뜻이겠습니다.

그중 눈길을 끄는 프로는 MBC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스친소) 입니다. 스타들이 자신의 일반인 친구를 소개시키는 주선자로 나서는 프롭니다. 매칭 프로의 고전 ‘사랑의 스튜디오’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로, 달라진 세태를 보여줍니다. 그간 매칭 프로가 가졌던 최소한의 금기를 확 벗어던진 느낌이랄까요.

예전 매칭 프로들은 가급적 비슷한 수준(?)으로 출연진을 동질화하고, 탈락자도 과하게 부끄럽지 않게 배려하곤 했습니다. 경쟁자인데도 남자팀 여자팀으로 나눠 공동미션을 수행하기도 했죠. 한마디로 성패를 떠난, 선남선녀의 우아한 사교장같은 의미가 강했습니다. 이런 프로의 재미가, 사실은 연애나 결혼시장에서 통용되는 ‘조건’‘등급기준’을 재확인하고 그에 따라 출연자들을 적당히 짝맞춰 보는 재미란 것을 가급적 감추었던 거죠.

스타들이 자신의 일반인 친구를 소개하는 MBC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


하지만 ‘스친소’는 다릅니다. 우선 출연자들의 편차가 심하고, 경쟁은 노골화됩니다. 매회 출연하면서 거듭 딱지맞는 ‘폭탄’들의 굴욕과 사투는 코믹하게 강조됩니다. 마치 폭탄의 ‘서바이벌 게임’ 처럼 보일 정도로요. 출연자들에 대한 품평도 가차없습니다. 스튜디오에 한 명씩 차례로 등장하는데, 의례적인 치켜세우기가 끝나면 외모·나이·첫인상에 대한 솔직살벌한 지적이 나옵니다. 10살가량 차이 나는 여성 출연자를 함께 출연시키고는 ‘이모님’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출연자들은 이런 처사에 낯붉히기는커녕, 부족한 부분을 다른 매력으로 채우겠다며 적극적인 자기 세일에 나섭니다. 시청자들 또한, 알고보면 무지막지한 ‘서열화·등급화’를 불편해하기 보다, 경쟁과 성패에 집중하고요.

여성 연예인 6명이 합숙하며 맞선보는 리얼리티쇼 ‘골드미스가 간다’(SBS)에서는 한 결혼정보업체에 의뢰한 결과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1m60cm이 안 되는 송은이와 신봉선은 ‘가입불가’, 이미 38세로 나이면에서 낙제점인 양정아는 ‘예쁘지만 무서운 얼굴, 남자들이 부담스러워하는 너무 큰 키’, 송은이는 ‘다른 조건들이 나쁘나 재력있으면 가능성있음’이란 판정을 받았지요.

인류 최후의 낭만적 영역이자 현실의 유일한 탈출구처럼 제시되는 연애시장이야말로 피튀기는 무한 서바이벌 게임의 경연장이라는 것을 매칭 프로들은 잘 보여줍니다. 정작 교환되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조건이나 육체적 계급이라는 것도요. 이런 프로들이야말로 연애·결혼시장에 작동하는 불평등·무한경쟁·시장논리에 대한 사회적 동의절차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전에 한 칼럼니스트는 연애소수자의 인권론을 편 적 있습니다. 연애시장에서 계속 고배를 마시는 폭탄들 얘깁니다. 시니컬한 어조로 “연애시장에서는 한번 팔리면 영원히 잘 팔리고, 안 팔리는 것들은 끝까지 안 팔린다”면서 “이런 연애약자들을 위한 인권운동을 최후의 대중운동으로 펼치겠다”라고도 했었죠.

한 번 물어봅니다. 당신은 연애시장에서 경쟁력이 있습니까? 한마디로 ‘킹왕짱 킹카’? 아니면 ‘민폐폭탄’? 폭탄에 가까운 저는, 앞으로 ‘스친소’를 보면서 무작정 낄낄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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