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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디폴트 위기 … ‘사막의 기적’이 사상누각 되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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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두바이 서부 주마이라 지역의 주상복합단지 건설현장. 공사가 중단되면서 트럭과 중장비들이 멈춰서 있다.

“큰집에 매주 문안 인사를 드리러 간다고 합니다.”

최근 두바이 지도자 셰이크 무하마드 빈 라시드의 근황에 대해 한 현지인은 5일 이렇게 말했다. 7개 토후국으로 구성된 아랍에미리트(UAE)의 큰집은 아부다비를 말한다.

현재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두바이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한 나라는 바로 인근 토후국 아부다비다. 국부펀드를 관장하는 아부다비투자청의 자산 규모만 9000억 달러가 넘어 오래전부터 ‘동생 토후국’ 두바이의 물주 역할을 해 왔다. ‘두바이 알-사카피(문화)’라는 월간 문화잡지에 근무하는 이 현지인의 말은 두바이의 현 상황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채무를 이행할 수 없는 디폴트 상태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급박해진 두바이 지도자가 아부다비를 문턱이 닳게 찾고 있다는 소문이 나돈다.

전 세계 언론으로부터 ‘창조적 리더십’이란 찬사를 받던 셰이크 무하마드는 요즘 두바이 언론에서도 잘 다뤄지지 않는다. 중요한 공식 행사에만 겨우 참석하고 있다. 11월 7일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연설한 이후 국가창건일(11월 30일) 기념식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현지의 한 한국 기업인은 “특단의 조치를 내리기 위해 장고에 들어갔다는 소문만 무성하다”고 전했다.

타임지는 그를 올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명단에 포함시켰다. 서방 언론조차 창의력, 무한 상상력, 강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사막을 10여 년 만에 ‘상상의 세계’로 바꾸어 놓은 그를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했다.

그러나 초고속 성장을 주도하던 영웅이 장고에 들어가면서 국민도 불안해하고 있다. 새벽에도 공사현장과 정부기관 사무실을 시찰하던 지도자의 존재가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다. 무하마드는 ‘군화 맨’으로 불린다. 수행원도 없이 현장을 방문해 격려하고, 문제가 있으면 관련자를 즉시 처벌하는 엄한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우수 공무원에게는 몇 년치 연봉을 포상금으로 주는 파격적 모습도 보여 왔다. 강력한 말의 근육을 사랑하는 승마선수 출신답게 추진력만큼은 세계 어느 나라 리더에게 뒤지지 않는 인물이었다.

무하마드는 11월 7일 WEF 연설에서 “아랍에미리트는 금융위기에 절대 꺾이지 않을 것”이라며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말을 마치면서 그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포럼에는 국제 사회의 유명 인사 700명이 모였다. 그는 또 “지난해 중국 방문 당시 위기의 징후를 언급했다”고 말했다. 두바이가 현재의 위기를 예견하고 준비해 왔다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그는 재정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인정했다. “우리는 글로벌 빌리지에 살고 있고, 세계 경제가 고통을 겪으면 두바이도 예외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 후 무하마드는 두문불출했다. 20일에는 9명으로 구성된 ‘최고재정위원회’가 발표됐다. 셰이크 무하마드가 두바이의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발족한 비상대책위원회였다. 이들은 거의 매일 회의하고 그 결과를 지도자에게 직접 보고한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 위원회는 두 달 전 지도자의 긴급지시로 구성됐다고 한다. 700억 달러에 달하는 부채상환 등 재정위기를 은밀히 관리하려 했으나 위기설이 확산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공개를 결정한 것이었다.

무하마드는 11월 30일에야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국가창건일 연설에서 그는 “미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모든 정보를 공유하자”고 당부했다. 어려워도 참고 견디며 슬기롭게 역경을 헤쳐 나가자는 메시지였다.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강력한 지도자의 모습은 간데없었다. 폭락하는 부동산 값과 주가, 국가 부도설, 국영기업의 구조조정, 대규모 프로젝트 중단 등 잇따른 악재에 지친 모습이었다.

그나마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부다비로부터 자금 지원의 움직임이 확인된 이후였다. 11월 25일 두바이 언론은 아부다비에 본사를 둔 리얼에스테이트 은행이 두바이의 1, 2위 모기지 업체인 암락과 탐월을 인수합병한다는 기사를 실었다. 아부다비가 두바이를 구하기 위해 국영은행을 통해 거액을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신규 대출까지 중단한 두바이의 모기지 업체는 유동성을 회복할 수 있게 됐다. 11월 30일 두바이 신문들은 아부다비 지도자와 무하마드가 환하게 웃으며 대담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과 글을 1면 톱기사로 실었다.

한국 기업들도 걱정하는 분위기다. “지금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 승선한 기분입니다.” 5일 전화 인터뷰에서 한 한국인 업체의 직원은 자신의 상황을 하소연했다. 열심히 뛰어야 하는데 분위기가 영 아니라는 것이다. “두바이보다 아부다비나 주변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에 더 관심을 가지고 접촉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내년 1분기까지 두바이 전체의 구조조정이 진행될 것이고 그 방향이 어떻게 잡힐지 지도자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고 다른 한국 기업의 사장은 지적했다. 두바이 투자의 최대 장점이었던 ‘노 택스(No Tax)’ 정책도 바뀔 수 있다는 우려가 외국 기업 사이에 팽배해 있다. 국가가 디폴트 상태인데 세금을 안 거두고 견딜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에서다.

관광객도 줄고 있다. 최고급 호텔 부르즈 알 아랍의 스카이라운지에서 하루 여러 병 팔리던 800만원짜리 최고급 칵테일을 찾는 손님도 뚝 끊겼다. 일부 현지인은 이런 분위기를 환영한다. 그동안 초고속 성장의 직접적 수혜자가 아니었던 자국인 베두인들은 반발의 감정을 드러냈다. 이들은 지나친 대외개방에 분노한다. “전통문화를 모두 버리고 지나치게 세속화하고 서구화한 결과가 이것이냐”는 블로거의 글도 인터넷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다른 블로거는 “매춘까지 허용하며 정신까지 팔아먹던 지도자는 이제 우리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위기설 속에서 지도자에 대한 절대적 신뢰와 존경에 금이 가고 있다.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교수·중앙Sunday 중동전문위원 amir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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