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남도 오백리길 섬진강-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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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같은/개울물들이 끊이지 않고 모여 흐르며/해 저무는 강변에/쌀밥같은 토끼풀꽃/숯불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김용택의

시'섬진강'에서)

얼었던 강물이 풀린다는 우수(18일)도 지났다.겨우내 움츠러들었던 섬진강변의 마을들이 봄볕을 받아 이제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섬진강의 강마을들은 고향처럼 친근감을 준다.관광지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서정에 젖게 한다.강촌풍경을 바라보며 어느새 다가온 상큼한 봄내음을 맡다보면 찌들었던 마음도 한결 가뿐해질 것이다.

남도 5백리길(2백12.3㎞)을 나그네처럼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큰 도시를 지나는 것도 아니고 넓은 들을 흐르는 것도 아니지만 가장 아름다운 강이다.

섬진강은 전북진안군마령면 원신암마을에서 시작된다.

실핏줄같은 시냇물이 모여 전북순창.전남구례.하동군을 지나면서 큰 줄기를 이루고 마침내 광양제철소가 있는 광양만으로 흘러들어간다.섬진강 강마을중에서 가볼만한 곳을 소개한다.

◇원촌마을=전북정읍시칠보면무성리에 있는

원촌마을은'상춘곡(賞春曲)'으로 유명하다.상춘곡을 읊은

정극인(丁克仁.조선 태종~성종)은 원촌마을 앞을 흐르는

자라내에'불우헌'이라는 초가를 짓고 봄경치를 완상하면서 풍류생활을

노래했다.지금

은 초가 대신 현대식 정자가 들어서 있다.

호남고속도로 태인인터체인지로 나가 30번 국도를 타고 칠보까지

간다.칠보에서 원촌까지는 차로 5분.칠보면엔 식당은 많으나 숙박시설은

없다.근처 칠보발전소와 섬진강댐도 들러볼 만하다.원촌마을 이장

김호승씨(0681-34-3772).

◇천담리='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의 수필집을 쓴 시인 김용택의

고향마을(임실군덕치면천담리)이다.김씨는 이 수필집에서 천담리를'섬진강

강마을중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꼽았다.이 마을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을

끼고 한가롭게 흐르는 섬

진강 상류의 물줄기를 지척에 두고 있다.마치 대청마루 앞으로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강가 가까이 있는 마을이다.강가 느티나무와 선돌,그리고

정겹기만한 마을의 집들이 강촌풍경의 전형을 보여준다.순창읍에서 27번

국도를 타고 전주쪽으로

30분쯤 달리다보면 회문산 자연휴양림 간판이 나온다.여기에서 우회전해

섬진강 강변길을 따라 20분쯤 남쪽으로 가면 천담리가

나온다.덕치면사무소(0673-43-5004).

◇압록마을=전남곡성군오곡면압록리에 있다.압록역이 볼만하다.압록역은

섬진강의 퍼런 강줄기를 끼고 있는 강변역이다.압록역 왼편에는

섬진강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다리'두가교'가 있고 압록역 바로

앞에는'쇠줄다리'가 있어 운치를 더한다.

이 역의 명물은'김영애 소나무'.동해안 정동진역에 있는'고현정

소나무'처럼 드라마'모래시계'로 유명해진 소나무다.극중에서 빨치산

남편을 둔 김영애는 압록역에서 투신자살한다.이 소나무는 오가는

기차들이 휘젓는 바람을 버텨내느라 크게

자라지는 못했지만 옹골찬 매무새로 여행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남원에서 곡성을 지나 17번 국도를 따라 가다보면 14㎞ 지점에 압록역이

나온다.압록마을 주변엔 횟집과 여관이 몇군데

있다.가야산장(0688-62-8429).

◇유곡마을=전라선 압록역과 구례구역 중간지점에 있는 곡성군

유곡마을은 대숲으로 유명하다.섬진강 줄기 1천여평에 무성하게 들어선 이

대나무숲은 살아있는 동양화다.유곡마을 대밭은 섬진강가에서 가장 넓은

규모다.이 대밭가에 있는 정자(

유곡정)에서 바라보는 섬진강 풍경 또한 아름답다.전라선 구례구역앞

다리를 건너기 전 우회전해 강변길을 따라 15분 가면 유곡마을이

나온다.유곡마을에는 숙식시설이 없다.구례구역이나 구례읍까지 나와야

식당.여관이 있다.유곡마을 이장 백

만도씨(0664-782-9305).

◇모암마을=구례구역에서 하동까지 팔십리길을'하동포구 팔십리길'이라고

한다.이 길은 섬진강 푸른 물과 하얀 모래톱을 따라 이어지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힌다.이 길을 따라 가다보면

화개장터가 나오고 화개장터 위쪽으로

화개천 강마을 모암마을(경남하동군화개면모암리)이 있다.모암마을은

차나무로 유명하다.이곳 자생차나무에서 만들어지는'죽로차(竹露茶)'는

맛이 뛰어나다.차잎은 대나무숲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받아먹고 자란

것이라고 한다.모암마을 주변에는 숙식시설이 많다.모암리 이장 황인석씨(0595-83-1693).

◇평사리=버들개지가 흐드러지게 핀 강변길을 따라 가다보면 널따란

들녘이 딸린 풍요로운 강마을이 보인다.하동군악양면평사리는 그런

강마을이다.박경리의 소설'토지'의 무대로 잘 알려진 곳이다.문학작품의

실제무대라 지금도 여행객들이 자주 찾는다.섬진강의 폭은 이 마을에서 가장 넓어진다.이 강가에는 봄철이면 재첩을 캐는 사람들이 몰려든다.평사리에서 하동읍으로 나오면 재첩국 전문식당이 많이 있다.담박한 재첩국물을 마시고 바라보는 섬진강변의 풍경은 도시인의 스트레스를 확 풀어준다.평사리 이장 이쌍석씨(0595-83-2071). 〈이순남 기자〉

<사진설명>

살아있는 동양화

푸른 대숲과 흰 모래톱이 어우러진 강촌 유곡마을 풍경은 나들이 나선

도시인들에게 봄의 서정을 불러일으킨다.봄이 오는 길목인 남도 5백리

길을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섬진강변의 강마을들은 아련한 어린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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