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비만 공식, 안에선 찌고 밖에선 빠진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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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호 15면

당뇨병 가족력이 있는 박경순(45·가명)씨는 요즘 부쩍 올라간 혈당치 때문에 긴장해 있다. 40대 초반에 당뇨전단계(공복 시 혈당 100~125㎎/dL)로 들어서더니 최근엔 급기야 당뇨병 기준치를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런 현상은 날씨가 추워지면서 더욱 두드러졌다. 운동을 게을리한 데다 외출까지 줄어들어 체중과 뱃살도 부쩍 늘었다. 박씨는 송년회가 잦은 12월이 더 걱정이다.

천고마비의 계절인 가을을 살찌는 계절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먹을 것이 많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체지방이 늘어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겨울은 다르다.

실제 미국의 한 연구팀은 남캘리포니아 주민 4541명을 대상으로 2년간에 걸쳐 건강진단을 실시했다. 그리고 계절별로 혈당 평균치를 집계했다. 그 결과 남녀 모두 겨울에 가장 높았다. 체중도 겨울에 가장 많이 나갔다. 2년간의 기상 데이터와 비교했더니 기온이 내려갈수록 외출 빈도는 적었고, 혈당치와 체중은 상승했다.
 
추위로 몸 부으면 움직이기 싫어져
겨울은 생리적으로 지방을 저장하는 계절이다. 원래 동물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면서 월동에 대비해 체지방을 비축한다. 보통 2∼3㎏의 증가는 계절에 따른 생리적 리듬의 범주에 속한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이 아닌 사람도 이런 생리 주기를 따른다는 것.

여기에 연말연시의 회식이 줄 지어 있다. 보통 회식 때는 남성이 하루 필요로 하는 2500㎉(여성 2100㎉) 내외의 열량을 한 끼에 섭취한다. 활동량 부족도 비만을 부추긴다. 추운 계절에는 실내에 머무르려는 경향이 커진다. 외출 빈도가 낮아지고 TV를 보면서 ‘핑거푸드(아무 생각 없이 집어먹는 과자류의 간식)’ 섭취량이 늘어난다.

여성은 부종도 한몫한다. 추위로 몸이 수축되면 근육이 경직되어 혈액 순환은 점점 더 나빠진다. 몸이 붓는 것은 정맥혈이 고이기 때문. 심장에서 내려간 혈액이 돌아오려면 근육이 정맥을 꽉꽉 짜 줘야 하는데 운동량이 부족하니 돌아오지 못하는 혈액이 정맥에 고이는 것이다. 여기에 신진대사까지 떨어져 몸이 잘 붓는다. 손발이 부으면 몸이 더 무겁게 느껴지고, 그러면 점점 더 움직이기 싫어진다. 체중 증가의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난방 온도 조금 낮추는 것도 방법
반면 겨울철 생리 메커니즘을 잘 이용하면 오히려 다이어트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추위를 느끼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몸에서 열을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소비 칼로리가 증가한다. ‘춥다’는 느낌의 신호를 받는 것은 자율신경과 호르몬이다. 뇌에서 신호를 받은 근육과 심장·갈색지방세포는 운동과 상관없는 다른 경로로 소비성 화학반응을 일으켜 열을 발생한다. 근육이 떨리며 열을 일으킨다. 이때 소비되는 에너지원으로 지방이 활발히 쓰인다. 일본의 한 연구팀은 햄스터를 두 그룹으로 나눠 23도와 5도의 온도에서 각각 사육했다. 각 그룹 중 절반엔 보통 먹이를, 나머지 절반엔 지방이 많은 먹이를 줬다. 그 결과 23도의 환경에선 지방이 많은 먹이를 먹은 햄스터가 점점 살이 쪘다. 그런데 5도에서는 먹이의 차이에 따른 체중 차이가 없었다. 5도에서 햄스터는 23도의 1.5배 가까운 먹이를 먹어도 비만해지지 않았다.

따라서 겨울 추위는 다이어트의 ‘친구’다. 온도를 조금만 낮춰도 체내 에너지 소비량이 10% 는다. 예컨대 추위 속에서 에어로빅을 하면 체지방이 잘 탄다. 날씨가 추운 겨울, 걸어서 외출하면 다이어트 효과는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난방 기구의 설정온도를 조금 낮추거나 겉옷을 한 겹 벗는 생활로도 몸의 열 생산은 의외로 높아진다. 10%만 증가해도 이는 다이어트와 혈당 관리의 강력한 지원군이 된다.
 
추위 노출 전엔 충분히 워밍업을
다만 겨울철엔 운동 시 반드시 유의사항을 지켜야 한다. 추운 환경에선 관절과 근육이 경직된다. 따라서 갑자기 추위에 노출하는 것은 금물이다. 특히 여성은 몸이 찬 사람이 많다. 이런 여성은 몸의 열을 높인 뒤 야외 운동을 해야 한다. 목욕이나 마사지를 먼저 한다거나, 몸이 따뜻할 때까지 실내에서 워밍업을 한 뒤 운동을 한다. 평소 고춧가루·파·마늘 등 열을 발생하는 음식을 많이 먹는 것도 요령. 고혈압·심장병·뇌졸중 우려가 있는 순환기질환자도 유의해야 한다. 추위로 혈관이 수축하면 갑자기 혈압이 올라간다. 이런 경우 때론 응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관절에 문제가 있는 사람도 추위에 노출되는 것이 부담스럽다. 관절이 굳어 통증이 악화하고, 미끄러운 길에서 낙상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평소 스트레칭으로 유연성을 길러야 한다. 추운 곳에서 운동을 하면 피로가 빨리 찾아온다. 혈류가 나빠져 피로물질인 젖산이 쉽게 배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소보다 운동량과 강도를 줄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또 목이 마르지 않더라도 충분하게 수분을 섭취해야 한다. 겨울에는 갈증을 잘 느끼지 않아 물을 적게 마시고, 그 결과 혈액이 걸쭉해져 혈액순환이 잘 안 될 가능성도 있다.

도움말=백병원 가정의학과 강재헌 교수,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김종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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