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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기타 동호회 ‘나무소리’ 스토리

중앙일보

입력

아스팔트를 딛고 사는 도시인들은 자연의 감촉이 그립다. 땅 내음이 맡고 싶은 것이다. 그 땅에 뿌리박은 나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그래서 그들이 내는 소리엔 행복이 실려 전해온다. 도봉구 기타 앙상블 ‘나무소리’ 얘기다.

가족만큼 친숙, 가족보다 더 가족
“ 어느 찬 비 흩날린 가을 오면 버스 창가에 기대 울지.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
매주 화요일 도봉구청에 가면 귀에 익은 음악소리가 잔잔한 기타 선율을 타고 흐른다. ‘나무소리’가 만드는 화음이다. 도봉구 주부들로 구성된 기타 연주 동호회 ‘나무소리’는 올해로 4년째를 맞는다. “도봉 문화원 기타반에서 처음 만났는데 처음부터 죽이 그렇게 잘 맞을 수 없었어요. 이제는 가족만큼 친숙한, 아니 오히려 가족보다 더 가족적인 이들이죠.”
기타반 시절 반장을 맡아 아직까지 모임에서 반장으로 통하는 맏언니 김문혜(51)씨는 모임을 소개해달라는 주문에 주저 없이 ‘가족’을 이야기한다.“남편이 들으면 섭섭할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주말을 제외하곤 남편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있어요. 이제는 정말 도저히 따로 생각하지 못할 만큼 서로에게 또 하나의 가족이죠.”홍천문화축제에 초청 받았을 때의 일이다. 아침에 버스로 출발하는데 개인 사정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게 된 권보화(48)씨가 회원들을 배웅하다 아쉬움에 끝내 눈물을 보였다. 그런 권씨를 본 회원들이 모두 차에서 내려 어깨를 들썩이면서 일대는 울음바다가 돼버렸다. 함께 출발하려 했던 다른 참가팀들은 무슨 큰일이 일어난 줄 알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고.
권씨는 “기타를 통해 내 자신이 많이 변했음을 느낀다”며 “기타를 만나기 전에는 마냥 무기력하다 느꼈었는데 나도 뭔가를 할 수 있음을 깨달은 요즘엔 나날이 너무 즐겁다”며 뿌듯해한다.
 
구청 화요음악회 최고의 인기팀
사실 ‘나무소리’는 도봉구청에서 매주 화요일 열리는 화요음악회 최고의 인기팀이다. 매주 7~8개의 팀이 번갈아 출연하는데 관객들의 박수를 가장 많이 받는다. 화요음악회를 기획한 장수길(46)씨는 “출연하는 팀들이 모두 만만찮은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나무소리는 특히 돋보이는 팀”이라며“도봉구를 대표하는 주부 기타 앙상블이라 할 만하다”고 추켜세운다. 현재 7명인 회원 모두 5년 전만 해도 기타를 만져보지도 못했던, 말 그대로 ‘완전
초보’였다. 대부분 주위의 권유로 문화원 기타반에 가입한 이들은 비슷한 시기에 중급반에 들었고 그 때부터 함께해 지금에 이르렀다.
이들은 나름대로 철저한 순혈주의(?)를 강조한다. 처음의 멤버 그대로 계속 함께할 계획이란다. 나무소리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통하는 백미경(43)씨는 “기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의외로 많더라고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만의 색깔을 만들어갈 겁니다. 그래서 좀 고집스럽지만 그냥 우리끼리만 하려고요”라며 이해를 구한다.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동호회 활동이 계속되면 어느 정도의 지출은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 생기는 남편과의 마찰도 피할 수 없는 일. 지금은 비록 웃으며 얘기하는 추억이지만. 모임의 막내인 김은주(36)씨는 “처음엔 음악이 단순히 좋아서 기타를 시작했는데 점점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남편 몰래 돈을 모아 기타를 샀죠. 나중에 알고 부부싸움 한번 크게 했죠, 뭐.”라고 웃었다. 이들이 만들어 가는 음악은 모임 이름인 ‘나무소리’에 그 답이 있다. 김문혜씨는“땅에 뿌리를 두고 하늘로 향하는 나무처럼 사람들도 땅을 딛고 서서 하늘을 우러르며 살아가는데, 나무의 소리는 곧 사람의 소리이고 자연의 소리”라며 “나무로 만든 기타의 울림도 자연의 소리이고 보면 이것이 곧 우리가 추구하는 음악”이라고 소개한다.

프리미엄 김지혁 기자
사진_ 프리미엄 황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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