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내려다보면 음악적 영감 떠올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조종간을 잡으면 온몸으로 자유를 만끽합니다. 땅을 내려다보면 번잡한 일상사를 잠시나마 잊게 됩니다. 좀 느긋하게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그래서 공연 회수도 연간 80여 회로 줄였어요.”

독일 피아니스트 게르하르트 오피츠(55·사진)가 ‘2008 대한민국 음악제’ 참가차 서울에 왔다. 유럽 순회공연 같으면 뮌헨 국제공항에서 출발하는 10인승짜리 경비행기를 직접 조종했겠지만, 서울까지 오려면 중간에 적어도 두 차례는 기착을 해야 하고 피로감도 만만치 않아 일반 여객기를 이용했다.

“40세가 되어 늦깎이로 조종 기술을 배워 비행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유럽 공연 다닐 때는 아내·친구· 제자들을 함께 태워 다니죠.”

비행기를 조종한다고 해서 스피드광이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자연과의 교감’을 중시할 뿐이다. 하루 종일 건반 앞에 앉아있기보다 알프스 산자락에도 올라가 보고 숲 속을 거닐면서 자신의 음악세계를 살찌운다. 연습시간은 하루 1시간에 불과하다. 나머지 시간은 오페라·교향곡·가곡 등 다른 장르의 음악을 듣고 연구한다. 브람스의 피아노 소나타, 협주곡을 연주하기 위해 그의 교향곡·가곡을 깊이 연구하는 식이다.

오피츠가 음악 이외에 문학·미술·철학·물리·역사·천문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의 스승 빌헬름 켐프(1895~1991)의 영향 때문이다.

“베토벤·슈베르트·브람스·말러 등 작곡가들도 당대의 문학가·화가들과 폭넓게 교우하면서 창작의 영감을 얻었죠. 세계 전역에 연주 여행을 다니면서 틈 나는 대로 박물관과 미술관에 꼭 들립니다. 그렇다고 미술품 수집가는 아닙니다. 훌륭한 그림은 박물관에 걸어 놓고 많은 사람이 함께 볼 수 있도록 해야죠.”

오피츠는 알아주는 미식가다. 일본인 아내의 영향인지 몰라도 주로 생선과 해산물을 즐긴다. 뮌헨 자택의 와인 창고는 보르도 와인으로 가득 차 있다. 5세 때 피아노를 시작한 오피츠는 1977년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81년 당시 26세의 나이로 뮌헨 국립음대 최연소 교수로 발탁됐다. 연주와 교육을 병행하는 것은‘젊은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10명의 제자 가운데 한국인 학생이 2명. 덕분에 한국어 인사말이 꽤 유창하다. 일본어를 포함해 7개 국어도 모자라 한국어·중국어에 도전하고 있다. 한자공부도 열심이어서 천자문(千字文)을 최근 뗐다. 음악가들은 듣는 귀가 예민해 외국어 익히는 데 남다른 재주가 있다며 나름대로 해석을 내놓았다.

오피츠는 2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성남시향(지휘 김봉)과 함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제1번과 제2번을 연달아 연주한다. 그에게 브람스는 어떤 존재일까.

“저에게 브람스는 ‘모국어’와 같은 존재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브람스에 더욱 깊이 빠져듭니다. 깊이있고 매우 인간적인 음악이죠. 심금을 울리는 영혼의 목소리입니다. 화려하고 눈부시진 않지만 감동의 여운이 오래갑니다. ”

 글=이장직 음악전문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J-HOT]

▶ "32세에 빚 9000만원…여친 보면 가슴저려"

▶ DJ, 대통령 당선 사흘뒤 美재무차관과 담판도

▶ "1병 170만원짜리 와인 박스채 놓고 마셔"

▶ 오세철 교수 "판사에게 국가 변란이 목표라고 설명"

▶ 경제위기 속 지방 골프장 "앗싸!" 표정관리 중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