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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제3의 길’ ② 에너지 원천기술을 선점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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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남아프리카공화국 세쿤다에 있는 사솔 공장은 석탄으로 석유를 만드는 세계 유일의 석탄액화석유(CTL) 공장이다. 지난달 말 이 나라 요하네스버그에서 북동쪽으로 두 시간가량 차를 타고 달려 맞닥뜨린 건 어마어마한 굴뚝과 파이프라인으로 둘러싸인 공장이었다. 축구장 90개를 합한 것과 맞먹는 면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안을 구경할 수는 없었다. 공장 관계자는 “보안 때문이다. 공장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기술 한 톨이라도 빼낼 기도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장 외곽을 겉돌면서 CTL의 원리에 관한 설명을 듣는 데 만족해야 했다.

CTL의 원천기술은 1910년대 독일 것이지만 상용화 기술은 남아공에서 나왔다. 공교롭게 남아공 역사의 오점인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가 이 기술의 산파역이 됐다는 점이 흥미롭다. 50년대 남아공 백인정부의 흑인 차별 정책을 제재하려고 세계 각국이 금수 조치를 취하자 자구 노력으로 석유를 만들어내게 된 것이다. 원리는 이렇다. 석탄을 잘게 부숴 산소와 수증기를 넣고 가열해 가스를 만들고, 이 가스에서 불순물을 제거한 뒤 액체로 만드는 것이다. 비용은 많이 들지만 국제 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선을 넘어서면서 각광받기 시작했다. 근래 국제사회에선 반세기나 된 CTL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 가스·석유에 대한 세금 우대를 철폐하고 ‘깨끗한 석탄’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중국이 CTL 기술 개발에 뛰어든 것이 자극제가 됐다. 사솔의 요한 반 리드 미디어 매니저는 “여러 나라에서 원천기술 라이선스를 달라고 하지만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합작투자만 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사솔은 매년 5000만 란트(약 80억원)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해 기술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CTL 기술을 바탕으로 가스로 석유를 만드는 가스액화석유(GTL) 기술을 세계 처음 개발해 앞서가고 있다. 2006년 중동의 카타르와 함께 9억5000만 달러를 들여 하루 3만4000배럴을 생산하는 GTL 공장을 짓기도 했다.

“에너지 원천기술은 자원 빈국을 단번에 자원 부국으로 만들어준다. 이제 에너지 전략은 자원 확보에서 한걸음 나아가 원천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한국외국어대 에너지자원기후변화센터가 제시한 차세대 에너지 전략의 하나다. 남아공은 원천기술 하나로 자원 부국을 이뤄낸 전형적인 사례다. 권원순 기후변화센터장은 “우리나라는 에너지 R&D 역량이 부족하고 외국 사례를 모방하는 데 급급해 핵심 기술을 쌓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 사이 세계 각국에선 길게는 수십 년 전부터 원천기술을 축적해 오고 있다. 또 태양광·연료전지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는 이미 세계적으로 산업화 경쟁에 돌입했다.

가까운 일본을 보자. 다른 분야처럼 신재생 에너지 원천기술 확보 경쟁의 선두 주자로 우뚝 섰다. 지난달 말 다녀온 일본 오사카(大阪)부 사카이(堺)시 앞바다의 매립지. 허허벌판이지만 내년부터 태양광발전소 건설공사가 벌어진다. 일찍이 62년 세계 처음 태양광 전지를 상용화한 샤프와 일본 중남부 지역의 최대 전력회사 간사이(關西)전력이 함께하는 프로젝트다. 간사이전력 관계자는 “총 발전 출력은 2만8000kW로 스페인의 세계 최대 2만3000kW급 시설을 능가할 것”으로 기대했다. 태양광 발전의 경제성 논란은 여전하다. 하지만 이에 개의치 않는 표정이다. 오히려 이곳이 샤프가 개발한 액정 패널과 박막형 신형 태양전지의 실험장이 된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일본 전력회사연합회 관계자는 “일본 주요 10개 전력회사는 2020년까지 태양광 발전 능력을 현재의 약 33배로 늘릴 계획”이라고 했다. 전국 30여 곳에 발전소를 설치해 모두 14만kW의 발전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세계 2위의 태양전지 생산업체인 샤프는 이런 태양광 붐에 힘입어 1위인 독일 Q셀즈를 바짝 추격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일본 정부의 보조금 제도도 태양광 발전산업에 촉진제 역할을 한다는 평가다. 민간업체가 목전의 이익 못지 않게 차세대 먹거리에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이뿐 아니다. 일본 기업들은 유럽이 전통적인 강자로 버티고 있는 풍력발전에도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은 풍향이 고르지 않아 풍력 발전이 어렵다. 그러나 유럽 시장을 겨냥한 ‘수출용 기술’ 개발에 한창이다. 도쿄전력 계열 일본 최대 풍력발전회사 ‘유러스 에너지’는 이미 유럽 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영국 웨일스 지방에서 운영하는 풍력발전소의 발전 능력을 세 배로 늘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일본 3위의 일본풍력개발도 내년까지 스코틀랜드에서 풍력발전소 두 곳을 건설한다.

각국 기업과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기술에 사활을 걸고 덤비는 연유는 간단하다. 에너지 기술은 기존 기간산업을 대체할 미래 신성장동력 사업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특히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받는 선진국들은 신재생에너지 기술 개발과 보급에 적극적이다. 미국은 2017년까지 석유 소비의 20%, 일본은 2030년까지 40%, 유럽연합(EU)은 2020년까지 20%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에너지 인프라 정비에 들어가는 비용만 2030년까지 20조 달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어마어마한 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선진국들이 이 시장을 놓칠 리 없다. 국가별로 가장 잘할 만한 분야를 면밀히 살펴 집중 육성하거나 정부가 세금을 동원해 에너지 기업을 지원한다. 신재생에너지 기술을 선도하는 국가들 역시 미국·일본·독일 등 기존의 선진국이지만 중국도 만만찮은 기세를 보인다. 태양열과 지열을 이용한 발전 방식에서는 기술 선도 국가로 꼽힌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복득규 수석연구원은 “에너지 기술을 발전시키려면 초기 시장을 확보하고 기술 개발 지원을 해야 한다. 개별 기업의 노력에 국가적 지원을 보태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기술 유출 막기 위해 해외선 꼭 합작투자”

원천기술 가진 남아공 에너지기업 ‘사솔’ 미디어 매니저

“미국·중국도 개발 나섰지만 따라오려면 한참 걸릴 것”

 지구촌 곳곳에서 신재생에너지와 대체에너지 개발 붐이 일자 아프리카 남단의 남아공이 주목받고 있다. 이 나라 에너지기업인 사솔은 1950년대에 개발된 CTL 기술과 이를 업그레이드한 GTL 기술로 세계 각국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이 회사의 요한 반 리드 미디어 매니저는 “공해물질이 가장 적게 나오는 깨끗한 석유가 CTL과 GTL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CTL 기술이 친환경 시대에 부쩍 인기를 끈다.

“지구상엔 석유보다 석탄이나 가스가 풍부하다. 하지만 석유는 발전부터 교통 연료에 이르기까지 널리 쓰이는 범용 에너지다. 풍부한 석탄으로 석유를 만들면 종전의 공급·배급 체계(주유소)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어 가장 효율적이다. 원자력·조력·풍력 등으로 자동차를 움직일 수는 없다.”

-신재생에너지와도 경쟁해야 하는데.

“사솔은 남아공 정부 정책에 따라 매년 바이오디젤 1000t을 생산한다. 시장성은 아직 크지 않다. 바이오연료, 수소나 연료전지 등 대체에너지 얘기는 많지만 제대로 상용화된 건 없다. 가격 문제 탓이다. CTL이나 GTL을 만드는 데는 단지 석탄·가스나 물·공기만 있으면 된다. 그래서 가격경쟁력이 있다.”

-미국·중국 등이 액화석유 기술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경쟁력엔 문제가 없나.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사솔의 주유소. 이곳에서 파는 기름은 모두 석탄에서 뽑아낸 것이다.


“우리 기술의 효율은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부단한 연구로 생산성을 올린 덕분이다. 그 과정에서 축적된 노하우가 우리의 장점이다. 다른 국가와 기업들이 따라잡으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사솔은 해외진출 때 합작투자 원칙을 고수하는데.

“기술유출을 막기 위해서다. CTL이나 GTL은 장치산업으로 투자 규모가 크다. 어느 정도 규모가 돼야 경제성이 있다. 그래서 파트너를 고르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다.”

-파트너 조건은.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을 갖췄는지, 석탄·가스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곳인지 등이다. 석탄이 풍부한 나라라면 다른 신재생에너지보다 CTL 기술에 투자하라고 권하고 싶다.”

-생산 증진 계획은.

“수요가 더 늘 것으로 보고 하루 CTL 생산량(15만 배럴)을 올해 18만 배럴로 20% 늘릴 예정이다. 8만 배럴짜리 새 플랜트 건설도 한다.”

<특별취재팀>

◆ 중앙일보=김영욱 전문기자, 이봉석(경제연구소),양선희·이철재(경제부문), 김동호 도쿄 특파원, 조문규(영상부문) 기자

◆한국외국어대=권원순·온대원·공유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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