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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家 진실을 말하다 - “근혜 언니와 갈라선 18년, 통곡의 ‘짝사랑 세월’ 보냈다 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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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령 씨가 인터뷰 중 흐느끼고 있다. 왼편 흐릿한 모습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남편 신동욱 교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끝내 오지 않았다. 지난 10월13일. KT 여의도 웨딩컨벤션 3층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표의 동생 박근령(54) 씨의 결혼식장. 기다리던 언니가 나타나지 않자 근령 씨는 결혼식 직전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눈물을 터뜨렸다.

박 전 대표의 불참은 이미 예정돼 있었다. 결혼식 3일을 앞두고 있던 지난 10월10일 일간지와 각종 인터넷 언론에는 일제히 ‘박근혜 대표의 결혼 불참’ 제하의 기사가 나왔다. 식장은 예상대로 썰렁했다. 현역 정치인이라고는 한나라당 흥사덕 의원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보낸 난과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박태준 전 총리,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김형오 국회의장 등이 보낸 화환만이 ‘전직 대통령 딸’의 결혼식임을 짐작하게 했다. 두 자매의 불화가 결혼식을 통해 확인된 셈이었다. 기자는 결혼식을 앞두고 세 차례 근령 씨를 만났다.

<월간중앙> 회의실에서 진행된 첫 인터뷰는 지난 9월25일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3시께까지 5시간 동안 진행됐다. 두 번째는 1주일 후인 10월2일 서울 동부지원 근처 한 변호사 사무실과 차 속에서 4시간, 세 번째는 지난 10월8일 오전 광화문의 한 커피숍에서 1시간여 동안 계속됐다. 근령 씨보다 열네 살 연하인 예비신랑 신동욱(40·백석문화대 광고마케팅학과) 교수는 이 세 차례의 만남에 모두 동행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그는 근령 씨의 생각을 거들며 간혹 본인의 의사를 표출하기도 했다.

1. 나와 달랐던 ‘언니 박근혜’
- “겉으로는 차가워도 속으로는 한없이 따뜻한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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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15일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34주기 추모식에 함께한 근혜(오른쪽), 근령 자매. 모처럼 밝은 모습이었다.

박지만 EG 회장 전화 인터뷰

“근령 누나의 판단력 믿을 수 없다”

박근령 씨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은 둘째누나의 결혼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근령 씨의 결혼 발표가 보도된 직후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우리 가족은 이 결혼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불편한 심정을 공개했다.

근령 씨의 결혼을 3일 앞두었던 지난 10월10일. 일부 언론에 또다시 ‘박근혜 전 대표가 동생 근령 씨 결혼에 불참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동생 박지만 회장도 불참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기사가 보도된 당일 <월간중앙>은 박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의 결혼을 끝까지 반대하는 속내를 듣고 싶었지만 박 회장은 언론과의 전화 통화를 경계하는 눈치였다. 인터뷰는 짧게 진행됐다. 다음은 박 회장과의 일문일답.

- 결혼을 끝까지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입니까?
“둘째누나의 판단력을 믿을 수 없습니다. 누나는 지금 주변 사람들에게 휘둘리고 있는 것입니다. 근혜누나나 저나 같은 형제인데 왜 도와주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자꾸 주변의 말에 솔깃해 그런 식으로 나오면 우리도 더는 어쩔 수 없습니다.”

- 박 회장과 근령 누나의 관계가 좋았던 것으로 아는데요.
“좋았죠. 좋았는데…. 자꾸 딴 이야기를 하시고, 만나면 제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당신 주장만 옳다고 하시니까….”

- 결혼식은 끝까지 참석하지 않으실 것인가요?
“결혼식에는 안 갑니다. 제가 계속 말하면 또 오해가 생길 것이고…. 더 이상 시간도 없고, 이만 끊겠습니다.”

첫 인터뷰를 했던 지난 9월25일. 근령 씨는 붉은 색 계통의 잔잔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나타났다. 오래 전부터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색깔이 옅게 들어 있는 선글라스를 낀 채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가능한 한 언니 얘기는 하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가뜩이나 본인의 결혼 때문에 혹여 언니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라며 언니에 관한 질문을 자제해 주기를 재차 당부했다.

언니에 관한 질문에 민감한 경계심을 나타내면서도 그는 정작 언니 이야기가 나오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며 인터뷰 내내 울먹이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 결혼 축하드립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것으로 압니다.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 교수를 택하신 이유는?
“육영재단 문제를 상의하면서 믿음직한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 같은 듬직함도 느꼈고요. 신 교수가 가진 단점을 다 끌어 안기로 결심했습니다. 젊은 사람들처럼 사랑을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둘 모두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이니 오누이처럼 서로 남은 인생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동생 지만에게는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은 매형을 갖게 해서 미안할 뿐입니다.”

- 언니가 결혼식에 오시리라고 믿습니까?
“언니 주변 분들이 말리지만 않으신다면 언니는 올 것입니다. 언니 마음은 제가 압니다.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언니의 심정을 알기 때문에 더 고통스럽습니다.”

- 근령 씨에게 언니는 어떤 의미입니까?
“언론이 언니한테는 제 이야기를 잘 안 물으시잖아요? 그런데 저한테는 그런 질문을 많이 하십니다. 언니가 공인이시다 보니 여러 가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제 생각대로 거침없이 말씀 드리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언니는 오래 전부터 나라를 위해 살기로 작정하신 분이니까…. 일반 가정처럼 친언니로서의 정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사사로운 정에 신경 쓸 분이 아니시죠.”

근령 씨는 언니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이 한마디를 하고는 목이 메었다. 박근령. 20대부터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언니 박근혜와 달리 공개되지 않은 삶을 살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 딸. 얼굴이 알려진 언니를 대신해 속옷을 사러 시장에 나가고, 언니가 읽고 싶어하는 책을 대신 사다 주기 위해 서점에도 들르던 박 전 대표의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다.

여느 집안의 자매라면 두 살 터울의 언니와 친구처럼 지냈을 수 있었겠지만, 둘은 그렇게 지내지 못했다. 서울대 음대 작곡과를 졸업한 근령 씨는 1982년 풍산그룹 창업주 류찬우 씨의 장남 류청 씨와 결혼했으나 1년이 채 안 돼 헤어졌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하다 1990년 귀국해 언니 박 전 대표가 이사장으로 있던 육영재단의 신임 이사장으로 추대된다.

자매 간의 불화는 육영재단 분규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박 전 대표는 당시 육영재단 이사장이었다. 숭모회라는 단체가 나타나 “엄청난 규모로 성장한 육영재단에서 지난 10여 년간 전횡을 일삼던 최태민 고문과 무능한 박근혜 이사장은 즉각 퇴진하라”고 주장할 때까지 둘의 관계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1974년 8월 육영수 여사 서거 직후 박 전 대표가 측근 최태민 목사와 ‘구국선교단’ ‘구국여성봉사단(후에 새마음봉사단)’ 같은 전국 조직을 만들어 움직이자 세간에는 곱지 못한 여론이 등장했다. 1990년 노태우 대통령 앞으로 근령·지만 남매가 “최씨가 언니를 통해 육영재단과 어린이회관까지 간섭했다”고 주장하는 편지를 보낸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육영재단 파문은…

“법치 국가에서 폭력 강탈은 있을 수 없는 일”

지난 5월 박근령 육영재단 이사장에 대한 이사장승인취소처분이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로써 박근혜 전 대표에 이어 설립자의 자녀들이 모두 재단 운영에서 손을 떼게 됐다. 1969년 4월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는 육영재단을 설립했다. 어린이 복지사업을 하려는 목적이었다.

1974년 육 여사 작고 후 육영재단은 크고 작은 분쟁 속에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1990년 박근혜 전 대표가 동생 근령 씨에게 육영재단 이사장 직을 물려주고 떠난 이후에도 분규는 끊이지 않았다. 1994년 육영재단 직원들이 근령 씨의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고, 육영재단의 관리·감독기관인 서울 성동교육청은 2001년과 2004년 근령 씨에 대한 이사장취임승인을 취소했다.

부실 경영과 감사 거부 등이 이유였다. 이에 근령 씨 측은 불복 소송을 냈으나 3심까지 이어진 재판 끝에 패소했다. 지난 5월15일 내려진 대법원 최종 판결에 따라 근령 씨는 실질적 이사장 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2006년 12월 근령 씨와 신동욱 교수의 약혼 사실이 알려지면서 육영재단의 문제는 더욱 악화됐다. 사무국장과 일부 직원들이 이사장인 근령 씨와 당시 육영재단 감사실장으로 있던 신 교수의 퇴진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28일에는 근령 씨의 퇴진을 요구하는 직원들이 어린이회관을 점거하면서 폭력사태까지 일어났다. 근령 씨와 신 교수는 이 폭력사태로 육영재단에서 나오게 됐다. 현재 서울 광진경찰서에는 육영재단과 관련한 고소·고발 및 진정 사건이 20여 건 넘게 접수돼 있다. 근령 씨는 현재 후임 이사가 선정되지 않은 상태여서 등기부상 이사 권한은 유지하고 있다.

그는 “법치국가에서 폭력 강탈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대법원의 판단은 존중하지만 등기부상 이사의 권한이 살아있기 때문에 재단 업무 수행권을 복원하고 권리를 찾을 법적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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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 일가의 단란했던 모습. 왼쪽부터 박근령 씨, 고 박정희 대통령,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고 육영수 여사, 박지만 EG 회장.

“언니 휴대전화번호 모른 지 수년째”

최씨 소동이 노사분규로 번지자 박 전 대표는 1990년 11월 어린이회관 이사장직을 동생 근령 씨에게 넘겨준다. 근령 씨를 지지하던 숭모회와 박 전 대표를 지지하던 ‘근화봉사단’은 육영재단이 있던 어린이회관에 수백 명씩 몰려와 몸싸움을 해댔다. 박 전 대표가 이사장직을 양보하면서 싸움은 일단락됐지만, 이 때부터 둘의 관계는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 언니 이야기를 꺼리시는 이유는 뭡니까?
“제가 그 동안 언니한테 크게 기여도 못 하고…. 뒷바라지도 못해 드렸던 것이 사실입니다. 어디 나가 박근혜 동생이라고 하기도 부담스럽습니다. 언니는 지금 공인으로 계시니까요. 그래도 남들이 “네가 돌아가신 부모님한테 잘한 게 뭐가 있느냐”고 물으시면 지금은 이미 돌아가신 분들이니 부담이 없어 말할 수 있는데, 언니에 관한 이야기는 항상 고민이 돼요.”

- 두 분 사이의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것이 1990년 육영재단 운영권 다툼 이후로 알고 있습니다.
“원래 미국에서 사업을 구상 중이었어요. 지인들과 말이죠. 그래서 본격적으로 해봐야겠다 결심하고 한국에 잠깐 들어왔었는데 육영재단 문제가 이미 곪아 있었던 것입니다. 최태민 고문을 몰아내야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제게 ‘너는 박정희 딸 아니냐? 육영재단 문제를 풀 사람은 너밖에 없다’며 저를 앞장세운 거죠. 그들은 제게 ‘최태민 목사의 사조직인 근화봉사단이 근혜 언니를 엄청 불명예스럽게 만들고 있으니 도와달라’고 했어요.”

- 1990년 노태우 대통령 앞으로 동생 박지만 회장과 근령 씨가 “최태민 목사로부터 언니를 구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신 것으로 아는데요.
“제가 지금 와서 썼다 안 썼다 말씀 드릴 상황이 아닙니다.”

-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도 자매지간 아닙니까? 시간이 흐르면서도 용서되지 않았나요?

충북공동선대위원장 수락으로 자매 불화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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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부덕이 크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언니의 휴대전화번호도 모릅니다. 언제부터인가 번호가 바뀌어 직접 통화를 하지 못하고 있어요. 집에 전화 드리면 항상 안 계시고요. 몇 년 전 언니가 제게만 개인 이메일을 가르쳐 주신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에 알려졌는지 그 이메일로 쓸데없는 글이 보내졌나봐요. 언니는 그나마 제가 알고 있던 이메일을 없앴다고 하더라고요. 둘이 주고받던 소통의 끈이 아예 없어진 거죠. 청첩장이 나오자마자 삼성동 언니 댁에 가져다 드렸는데, 직접 드린 것도 아니고 경비실에 맡겼습니다. 그런데 아직 못 받으신 것 같아요. 다시 찾아갔는데 일하시는 분이 집에 안 계시다고 번번이 돌려보내는 바람에 최근 언니 얼굴조차 못 봤어요.”<<계속>>
박미숙 기자 [planet88@joongang.co.kr]

<월간중앙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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