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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제3의 길’ ③ 에너지 허브로 거듭난 자원 빈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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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우리 땅에서는 석유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유럽 전역에 석유를 대주는 공급기지다. 석유를 팔아 국가 경제에도 크게 기여한다.” 지난 2일 현지에서 만난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만국의 샤크 포페 공보관의 말이다. 네덜란드는 이처럼 산유국이 아닌데도 석유 걱정을 별로 하지 않는다. 로테르담과 암스테르담이 세계적인 오일허브이기 때문이다. 특히 로테르담은 유럽 최대의 오일허브다. 인근의 또 다른 오일허브인 벨기에 안트베르펜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합치면 미국 걸프만에 이어 세계 2위다. 이른바 ARA(안트베르펜-로테르담-암스테르담) 허브다.

로테르담은 오만과 두바이 등 중동과 러시아에서 오는 석유와 가스를 저장했다가 이를 중부유럽 파이프라인 시스템(CEPS)을 통해 네덜란드와 벨기에·독일·프랑스·스위스 등 중서부 유럽의 각국에 공급한다. CEPS는 남쪽 지중해까지 연결돼 있어 유럽의 내륙지역까지 보낼 수 있다. 이를 위해 로테르담에 저장되는 석유와 가스가 무려 1억t(원유 기준으로 7억4100만 배럴). 한국이 정부와 민간 통틀어 비축하고 있는 석유는 1억3600만 배럴(2007년 기준)이다. 가스는 비축량이 거의 없다는 걸 감안하면 로테르담의 저장량은 한국의 6배나 된다. 이뿐 아니다. 로테르담은 석유를 활용해 부가가치도 크게 높이고 있다. 저장량 1억t 중 절반 정도는 독일 등 이웃국가로 수출되지만 나머지 절반은 국내에서 소비되거나 석유 및 석유화학제품으로 가공해 수출한다. 이렇게 벌어들이는 돈이 엄청나다. 포페 공보관에 따르면 부가가치 기준으로 네덜란드 GDP의 4% 정도다. 2007년 네덜란드 GDP는 7700억 달러라는 점을 감안하면 로테르담이 오일허브 하나로 벌어들이는 부가가치가 300억 달러(40조원)라는 얘기다.

네덜란드는 북해 유전 등 해외 유전지분을 일부 갖고 있지만 자기네 땅에서는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자원빈국이다. 그렇지만 네덜란드는 산유국이나 다름없다. 로테르담과 암스테르담이 세계적인 오일허브인 덕분이다. 세계 각국이 오일허브가 되겠다며 각축전을 벌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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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도 자원 없는 자원 강국=싱가포르도 오일허브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으면서도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석유를 대주는 공급기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남서부 해안에 있는 주롱섬이다. 1993년 싱가포르 정부가 오일허브로 크겠다며 인근의 자연섬 7개를 연결·매립해 만든 거대한 인공섬이다. 무려 70억 달러를 투자한 섬의 면적은 서울 여의도의 4배인 33㎢(1000만 평)다. 그리고 여기에 원유 5560만 배럴을 저장할 수 있는 오일탱크를 설치했다. 최근에는 이것도 부족해 확장하고 있다. 현지를 방문한 2일에도 1990만 배럴 규모의 탱크를 추가로 묻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싱가포르의 주력산업은 전자산업이었다. 그러나 80년대 말에 이르자 전자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싱가포르 경제가 침체에 빠졌다. 그 활로를 싱가포르 정부는 오일허브에서 찾았다. 원래 세계적인 중개항인 데다 중동산 석유가 아시아로 갈 때 인근의 믈라카 해협을 지나는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했다. 주롱섬에 저장·거래되는 석유는 대부분 중동산이다. 이를 역시 대부분 동남아시아에 수출한다. 동북아시아 수출 물량은 많지 않다. 정유공장과 석유화학공장도 많이 있다. 이 섬에 들어서자 엑손모빌과 셰브론 등 메이저 정유업체들의 간판이 도처에서 눈에 띄었다. 이런 석유 관련 업체만 80개가 입주해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GDP는 한국의 7분의 1밖에 안 되지만 석유제품 수출(하루 96만 배럴)은 오히려 한국(하루 수출 80만 배럴)보다 많다. 이곳에 탱크 터미널을 갖고 있는 오일탱킹의 싱가포르 현지법인 마우리시오 푸르덴시오 부사장은 “싱가포르가 자원강국으로 자처하는 건 이 같은 오일 허브 덕분”이라고 지적했다.

◆성공비결은 무엇인가=한국이 최근 동북아의 오일허브가 되겠다며 시동을 걸었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암만 등 중동 국가들도 오일허브가 되겠다며 저장시설 확충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네덜란드와 싱가포르는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포페 공보관은 “단순히 저장능력을 늘리고 세금 감면을 해준다고 해서 오일허브가 성공하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기름이 들고나는 시스템과 업체들에 대한 지원 정책 등 오랫동안 축적된 전문적인 노하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푸르덴시오 부사장은 “싱가포르는 주롱섬 개발 전망에 대한 정보를 우리에게 미리 알려주고 새로운 사업자가 들어오면 그들과 비즈니스 미팅도 주선해 준다”고 설명했다.

특이한 점은 정부보다 공기업이 전면에 나선다는 점이다. 주롱섬을 개발한 싱가포르 주롱타운코퍼레이션(JTC)이나 로테르담 항만국은 다 공기업이다. 외자 유치를 방해하는 요인을 파악하고 제거하는 일은 이들이 알아서 한다. 주롱섬의 도로와 인프라를 구축하는 개발사업과 로테르담항의 증설 및 터미널 인가 역시 이들의 소관이다. 정부가 완전히 권한을 이양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나 네덜란드 모두 언어 소통에 문제가 없는 것도 성공 비결 중 하나다. 두 나라 국민 대부분이 영어가 통하기 때문에 다국적기업들이 일하기 쉽다는 것이다. 오일허브에 눈을 돌리고 있는 한국으로선 곱씹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오일허브=석유제품 생산·공급, 입출하·저장·중개·거래 등 석유에 관한 모든 기능을 수행하는 석유 물류활동 중심 거점을 일컫는다.



“외자 유치 온 힘 … 정책 신뢰성도 오일허브 성공 요인”

포페 로테르담 항만국 공보관

 로테르담은 역사가 정말 오래된 항구다. 네덜란드 말로 하링이라고 하는 청어의 집산지였다. 17세기 초에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도 이곳을 발판으로 삼았다. 그러나 로테르담이 오일허브로 발돋움한 것은 1960년대부터다. 전쟁으로 중동의 정세가 불안정해지자 로열더치셸 등 석유 메이저들은 산유국에 건설했던 정유공장을 폐쇄하고 수요처로 옮겼다. 유럽에서 가장 적지로 꼽혔던 곳 중 하나가 로테르담이었다. 로테르담 항만국의 샤크 포페(사진) 공보관은 로테르담이 오일허브로 성공한 첫 번째 요인으로 네덜란드의 정치적·군사적 안전을 들었다.

-다른 성공 요인은 없나.

“로테르담은 유럽의 관문이다. 또 유럽은 거대한 석유 및 석유제품 시장이다. 이 같은 지리적 이점을 성공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정부와 항만당국의 노력도 필수다. 외자 유치를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정책의 신뢰성과 투명성, 일관성이다. 이게 없으면 오일허브로 클 수 없다.”

-세계 2위의 오일허브로 정착했지만 다른 나라들의 추격이 만만찮다.

“중동 정세가 안정화되면서 오만 등의 중동 국가들도 오일허브를 지향하고 있다. 조세 감면 등 각종 인센티브로 석유 메이저와 탱크 터미널 업체들을 유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로테르담의 위상에 손상을 입히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문제는 우리에게 있다. 로테르담의 규모를 키울수록, 한 지역에 집중될수록 테러 위협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게 가장 두렵다.”

-석유와 가스 등 일부 에너지에 집중하는 것도 문제가 아닐까.

“그렇다. 단적으로 2년여 전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이 중단되면서 위기를 겪은 적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양화를 지향하고 있다. 천연가스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액화천연가스(LNG) 허브를 겨냥하고 있다. 1기 생산·저장시설을 현재 가동 중이고, 지금은 2기 공사를 진행 중이다. 석탄허브도 지향하고 있다. 독일의 루르 지방 석탄을 저장·거래하고 있다. 에너지 전용 농작물인 바이오매스 허브도 노력 중이다.”

포페 공보관은 국가의 에너지 정책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석유나 가스 등 특정 에너지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돈이 많이 드는데도 신·재생에너지 등을 개발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특별취재팀>
◆중앙일보=김영욱 전문기자, 이봉석(경제연구소), 양선희·이철재(경제부문), 김동호(도쿄 특파원), 조문규(영상부문) 기자 ◆한국외국어대=권원순·온대원·공유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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