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영과 일본 배우 오다기리 조가 공연한 김기덕 감독의 ‘비몽’.
“저도 시사회에서 영화를 처음 봤어요. 내가 찍었다, 라는 느낌보다 내가 저 안에 있네, 라는 느낌이에요. 마치 꿈 같아요. 장면마다 그때의 감정은 기억이 나는데, 정말 내가 영화를 찍었던 걸까, 싶어요. 좀체로 갖기 힘든 이런 느낌, 참 좋아요.”
신작 ‘비몽’의 개봉(9일)을 앞둔 배우 이나영(29)을 만났다. 2년 전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하 우행시)으로 흥행 성공을 거둔 뒤, 그녀는 뜻밖에도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선택했다. ‘비몽’은 조형적 대칭구도가 두드러지는 영화다. 주인공 진(오다기리 조)과 란(이나영)은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 어느날 밤 벌어진 교통사고 때문에 서로의 기이한 관계를 깨닫게 된다. 진이 사고를 내는 꿈을 꾸자, 란이 몽유 상태에서 저도 모르게 실제로 사고를 낸 것이다.
"마음속으로 혼자 1년에 세 편씩 영화를 찍는다”는 이나영. [강정현 기자]
“시나리오를 보고 우와, 했어요. 김기덕 감독님 시나리오가 이렇게 재미있구나 놀랐죠. 저는 감독님 영화를 열심히 본 관객이 아니에요. 그래서 선입견이 전혀 없었죠.”
듣자니, 출연을 결정하고 불과 2주 만에 촬영이 시작됐다. 감독의 장기대로 촬영은 총 13회차, 초스피드로 끝났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아본 이후 두 달이 채 안 되는, 그야말로 꿈 같은 찰나였다.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는 것도 좋았던 것 같아요. 대개의 캐릭터가 (시나리오에 나오지 않는) 밑바탕이 있잖아요. 예컨대 ‘우행시’의 유정이라면, 어렸을 때는 이랬겠지, 담배를 피우니까 가방이 지저분하겠지 등등. 그런데 ‘비몽’은 그렇게 따져가야 할 영화가 아니었어요. 영화적으로 포장이 됐다고나 할까. 그런데도 슬픈 장면을 찍을 때는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몰입한 지 며칠 안됐는데도.”
영화 제목은 ‘비몽’(悲夢)인데 그녀는 ‘비몽(非夢)’으로도 해석했다. “꿈이 아닐 수도 있고, 굉장히 슬픈 꿈일 수도 있죠.”
감독은 이 영화에서 언어의 장벽을 무화(無化)시켰다. 오다기리 조는 일본어로, 이나영은 한국어로 대사를 주고 받는데, 이렇다할 설명이 없이도 서로 소통한다. “그것도 짱이다 싶었죠. 이상한 게, ‘비몽’은 뭐가 들어와도 다 어우러져 보였어요. 갈대밭에서 등장인물 네 사람이 연극적으로 어우러지는 장면도 너무 좋았고. 물론 일본어로도 대사를 받았죠. 중요한 단어나 동사는 외웠어요. (상대의 대사에) 감정이 치고 올라와야 하니까.” 속된 말로, 배우가 작품에 ‘꽂힌다’는 건 이런 경우인 모양이다. 그런데 이 배우의 불가해한 매력이 깊어지는 것은, 이 배우가 ‘꽂히는’ 대목이 겉보기와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이번 영화에도 나오지만, 역시나 저는 환자복이 잘 어울린다는 걸 느꼈어요. 드라마 ‘아일랜드’나 ‘우행시’도 그랬고, 최고로 잘 나와요. 병원 영화라도 하나 찍어야 할까봐요.(웃음)”
야박하게 말하자면, 그녀는 아름다움이라는 기득권을 지닌 덕에 그와 사뭇 다른 욕망을 좇는 게 아닐까. “저에 대해 뭔가 재미난 걸 했을 때 오히려 제 느낌이 더 나오는 것 같아요. 어떤 분들은 제가 광고에 나올 때 같은 옷을 입어야 예쁘게 봐주실 수 있지만, 굉장히 노멀하잖아요. 그렇게 꾸며놓으면 다 예뻐야겠죠.” 그녀가 좇는 바를 듣고 있자면, ‘재미’라는 말이 반복된다. “코미디도 하고 싶은데, 사람을 웃기는 감정은 제일 힘든 것 같아요. 제일 어렵다는 장르이기도 하고.”
‘우행시’와 ‘비몽’ 사이에 그녀에게 전해진 시나리오가 한둘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인연이 닿지 않았다. “그래서 2년 만인게 너무 아까워요. ‘아는 여자’이후 ‘우행시’도 2년 만이었는데. 마음속으로는 저 혼자 스케줄 조정하면서 1년에 세 편씩 영화를 찍고 있거든요. 근데, 요즘 영화 뭐 재미있게 보셨어요? ‘다크 나이트’는 어떠셨어요? 저는 조커가 간호사 복장으로 병원 폭파하겠다고 협박하는 장면이 압권이었어요. 슬픈 코미디 같아 또 보고 싶어요. 사람들을 패닉 상태로 몰아넣으며 쾌감을 느끼는 한편 사람들이 쉽게 자기에게 넘어오는게 슬프게도 느껴졌을 것 같아요. 슬픈 코미디죠…” 자, 어디 그녀에게 권해줄 슬픈 코미디 시나리오 없을까.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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