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이성계 사후 600년-②] 조국에 안착하지 못한 비운의 황세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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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일본에서 태어난 황세손 이구 씨는 고교 재학 중 8·15 광복을 맞아 점령군인 미군 사령부의 주선으로 도미해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을 졸업했다. 이후 뉴욕의 건축회사에서 독일계 미국 여성 줄리아와 만나 1958년 결혼했다. 1963년 이구 씨 부부는 함께 귀국해 창덕궁 낙선재에서 기거하며 사업을 꾸려나갔다.

하지만 사업은 연이어 실패했고, 줄리아 여사가 황손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두 사람은 1977년부터 별거하게 된다. 그 뒤 이구 씨는 사업에 손을 댔다 부도가 나자 도망치듯 일본으로 떠났다. 1996년 다시 귀국했으나 또다시 사업에 실패하고 일본에서 요양하다 2005년 7월 일본에서 숨을 거둔 것이다.

일본에 끌려가 비운의 세월을 살아야 했던 조선의 황족들. 이구 씨는 그들이 잉태한 희생양이었다. 그는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정체성의 혼란 속에 조국으로부터 버림받고 결국 일본에서 생을 마쳐야 했던 비운의 주인공이다. 더구나 그의 육신은 죽어서까지 한국과 일본 두 곳에 묻히는 신세가 됐다. 일본의 참배 요청에 불응한 이원 씨는 “이번 사태는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의 대한제국 황손들에 대한 무관심에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의 이유 있는 항변을 들어보자.

“일제에 의해 얼룩진 부끄러운 역사도 지울 수 없는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국내에서 조선 황실의 이야기는 남의 나라 이야기나 전주 이씨 집안의 문제로만 알고 있지 않나? 하지만 일본을 보라. 양자인 나까지 일본 집안 사람으로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우리가 독도문제에만 관심을 가지고 기울일 것이 아니라 우리 황실의 전통을 지키고 보존하는 일도 중요하다. 조선 황실은 전주 이씨만의 유산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글■박미숙 월간중앙 기자 [splanet88@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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