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에디터 칼럼

당신은 장난삼아 키보드 두드리겠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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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탤런트 최진실씨를 자살로 몰고 간 원인 중 하나가 인터넷의 악플이라는 주장에 대해 누군가 반론을 펴는 걸 들었다.

“그까짓 것 때문에 자살할 리가 있어? 뭔가 다른 게 있겠지.”

하지만 안 당해봐서 그런 말 하는 거다. 한번 당해보면 그 몸서리쳐지는 고통을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지난 5월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나는 광우병에 대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에서 "광우병 공포가 매우 과장됐다”고 주장했었다.

나름대로 양심껏 썼지만 촛불시위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국민을 호도하는 미친 칼럼’(어떤 네티즌 댓글)이라고 공격했다. 이른바 진보진영 사이트들에 그 칼럼이 내걸리면서 온갖 저주와 비난 악플들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그게 초등학생인지, 할아버진지, 남잔지 아니면 여자의 글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평생 들을 욕을 거의 다 들었다. 자존심 때문에 내색은 안 했지만 정말 끔찍했다. 사이버 테러는 과연 무서웠다.

 그래도 난 괜찮다. 정치인이나 연예인처럼 인기에 연연해야 할 직업은 아니니까. 하지만 연예인들은 대응을 하면 다시 이야깃거리가 되니까 대부분 울며 겨자 먹기로 참는다고 한다. 그만큼 정신은 황폐해지는 것이다. 인터넷 악플 리스트에 오른 연예인들 여러 명이 자살한 데 대해 “배부른 ×××들이 할 일 없어서…”라고 폄하하는 댓글도 있었다. 그렇게 쉽게 말할 문제가 아니다.

최진실씨가 죽은 뒤에는 “네가 진실이면 난 거짓이다” “하늘나라에서는 사채하지 마세요”라는 악플들이 나왔다고 한다. 그 사람들은 아마 장난삼아 컴퓨터의 키보드를 두드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알아두시라. 그런 나쁜 짓 계속하면 언젠가는 꼭 응분의 대가를 치를 것이다.

영국의 정보기관인 MI6는 올해 초 영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할 열 가지 위험요소를 언급했다. 그중 하나는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거짓 정보’였다. 인터넷 초강국인 한국에선 이미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인터넷의 거짓 정보와 악플은 한국의 대외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었다. 중국 쓰촨성 대지진 때는 “장꼴라들 잘 죽었다”는 식의 악플들이 있었다. 소문에는 초등학생·중학생들이 그런 막말을 낙서처럼 올린다고 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출처도 모르는 그런 악플들이 중국에서 반한 감정이 고조되고, 한류(韓流)가 퇴조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물론 그 피해는 앞으로 중국에서 물건 팔기가 갈수록 힘들어질 한국 기업들에 돌아올 것이다.

광우병은 또 어떤가. 인터넷 매체가 불붙인 광우병 괴담에 대한민국은 몇 달 동안 휘청거렸다. 국론은 사분오열됐고, 사람들끼리 서로 미워하는 마음이 극에 달했다. 특정 신문사에 광고를 주는 기업들을 공격해 치명적 타격을 주는 것도 인터넷을 통해 이뤄졌다.  

대한민국의 ‘인터넷 그늘’은 연예인만 자살로 몰고 가는 게 아니다. 나라까지 흔들리게 하고 있다. 읽는 사람들을 경탄하게 만드는 수많은 ‘좋은 댓글’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대책이 필요하다. 공공장소에서 악취나는 쓰레기를 치워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몇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① 무엇보다 초·중·고등학교에서 인터넷 악플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그게 얼마나 나쁜 건지를 애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내가 옥상에서 재미로 던진 돌멩이에 맞아 죽는 사람도 있다는 걸 말이다.

②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해야 한다. 인터넷은 자유의 공간이니까 그냥 놔두라는 사람들이 있는 걸 안다. 자신이 당해보면, 자기 가족이나 친척의 인생이 그래서 온통 뒤죽박죽이 되고 나면 그런 소리 못할 것이다.

③ 인터넷 실명제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익명성의 가면 뒤에서 인간은 별의별 짓을 다한다. 꼭 나빠서가 아니고 그게 인간의 본성이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원하는 사람은 밀실의 공간 속에 남아 있을 수 있지만, 밀실 속에 숨어서 광장에 노출된 사람들을 인격 살인하는 행위는 막아야 한다.

④ 포털의 책임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포털들은 “우린 책임 없다. 그런 글들은 우리가 쓴 게 아니고 우린 공간만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말이 안 된다. 신문사는 신문에 실린 모든 글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기고문을 실어도 너무 외설적이거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면 그걸 프린트한 신문사도 문제가 된다. 요즘 대형 포털에 글이 실리면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져간다. 신문의 파괴력에 비할 바 아니다. 그런데 “우린 책임 없다”고 할 순 없다.

인류는 자유를 향한 고통스러운 행진을 거듭해왔다. 하지만 남을 모욕하고, 인격 살인을 자행하는 건 자유가 아니다. 그건 폭력이고 범죄다. 인터넷의 이런 부정적 측면을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에게 인터넷은 재앙이 될 것이다.

김종혁 사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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