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네팔에 '밥집' 낸 부부의 좌충우돌 일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우리들의 소풍
김홍성 글·사진, 효형출판,236쪽, 1만원

여기 예사롭지 않은 삶을 선택한 부부가 있다. 십여 년간 잡지사 기자로 멀쩡하게 일하던 남편은 1990년대 초 직장을 관두고 오지 순례에 나섰다. 일본 유학파 출신 아내는 별말 없이 남편을 따른다. 인도와 히말라야 등지를 여행하던 부부는 급기야 네팔 카트만두의 변두리에 정착, 식당을 열기에 이른다. 그 이름하여 ‘소풍’이다.

책은 바로 이 남다른 부부와, 이들이 만나고 사랑하는 사람들 이야기다. 글쓴이가 바로 그 ‘간 큰’ 남편이다.

이들은 처음엔 월세 2만원의 ‘콧구멍 같은’ 방에서 신문지 깔고 밥해 먹고, 옷도 내키는 대로 입고, 이발소나 미장원에 갈 일도 없이 체면 안 차리고 산다. 하지만 “이렇게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기특한 생각에” 네팔 카트만두의 여행자 거리에 밥집을 낸다. 식당 이름은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취미를 따서 지었다.

부부의 좌충우돌 사연은 흥미롭다. 꼼꼼하고 영리하지만 행동이 굼뜨고 놀기 좋아하는 네팔인 목수들을 달래 식당을 꾸미면서 저자는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운다. 트레킹 가이드로 만난 네팔인 친구도 주방장으로 채용한다. 주방장은 잘 삐치고 술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사고를 치지만 종갓집 큰며느리보다 김치를 맛있게 담구고 라면을 잘 끓인다. 가는 귀 먹은 웨이터도 정겹다.

밥집의 목표 손님은 한국 관광객보다 네팔 현지인이다. 주메뉴는 소풍 가서 점심으로 먹기 좋은 김밥과 도시락인데, 갈치는 잘 팔리지만 삼계탕은 인기가 별로다. 왕이라도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먹는 일이 없기 때문에 욕심 사나운 메뉴로 취급됐기 때문이다. 밥집은 덴마크 대사관, 이집트 대사관 심지어 북한 대사관 직원이 올 정도로 호황을 누린다.

그러나 이들은 귀국을 권하는 노부모의 전화를 받고 2005년 한국에 돌아온다. 부부는 카트만두를 오가며 식당을 꾸리려 하지만 그럴 수 없게 된다. 착하디 착한 아내가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14개월간의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기 때문이다.

책은 아내의 투병 생활과 죽음에 대해 두 페이지 정도밖에 할애하지 않는다. 하지만 곳곳에는 글쓴이의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뭍어난다. 드러내지 않고 안에서 삭이는 슬픔이라 더 절절하다.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은 글쓴이의 아버지다. 일흔일곱에도 과수원을 만들겠다며 나무를 심는 아버지는 누군가 ‘왜 나무를 심느냐’고 묻자 “자식은 제멋대로 자라지만, 나무는 심은 대로 군말 없이 자라기 때문”이라 말한다. 자녀가 택한 쉽지 않은 길에 안타까워하지만 말없이 돈을 쥐여주는 부모, 항상 떠나려하지만 결국 고향과 부모에게 돌아오는 것을 반복하는 글쓴이의 모습은 읽는 이의 공감을 자아낸다.

백일현 기자

▒ 중앙일보 라이프스타일 섹션 '레인보우' 가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