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술맛 창조하는 酒女 3人 檢味師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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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아침에 출근하면 곧바로 술부터 입에 대는 여성들이 있다.
술회사에서 「관능검사 요원」으로 불리는,쉽게 말해 술맛 감별사들이다.
영국이나 프랑스에선 술맛을 감별하는 사람을 검미사(檢味師)라고 부르며 대부분 중역(重役)자리를 맡고있다.술의 맛과 향을 판별하는데 특별한 재능을 지닌 검미사들은 으레 소속회사의 간판인물로 나서고,회사는 품질의 우수성을 홍보하는 방 안의 하나로최고의 검미사가 자기네 회사에 근무한다는 점을 선전한다.이 검미사들은 맛과 향기를 판별하는데 지장을 주는 담배는 물론 피우지 않으며 항상 청정한 몸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적당한 운동과 금욕생활을 한다.국내술회사의 경우 오 직 술맛과 향기만을 감별하는 전문인력은 아직 두고있지 않으나 주로 특유의 섬세한 감각을 지닌 여직원들이 이 일의 상당부분을 담당한다.주류 3사가 내세우는 여성 관능검사 요원들을 만나봤다.
[편집자註] ◇OB맥주 양조기술연구소 朴은경(26)씨=출근하면 곧바로 그날 첫 생산한 맥주 반컵부터 마신다.품질에 이상은없는지,전날 생산한 제품과 맛과 향이 똑같은지 체크하기 위해서다. 고려대에서 식품공학 석사과정을 마친 朴씨는 『대학시절부터술마시고 노는것이 좋아 술회사에 입사했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연구소에서의 주업무는 크로마토그래피등의 기기(器機)를 이용,맥주의 성분을 분석하는 일.그러나 직접 마셔보고 맛 을 판정하는 일 또한 중요한 작업이다.
술맛 감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동일제품에 동일한 맛이 나도록 관리하는 일인데 OB맥주는 이를 위해 20명 가까운 관능검사요원을 두고있다.朴씨는 다른 여직원 한사람과 함께 두사람밖에 안되는 여성 요원.
맥주맛 감별을 시작한지 만 2년이 안됐지만 이제 그녀는 한모금만 마셔도 맥주의 뒷맛이나 목을 넘어갈 때의 느낌으로 정확하게 감별해 낼수있는 경지에 도달,주위를 탄복시키고 있다.
『즐거운 마음으로 기분좋을 정도로 마셔라.』 입사초기에는 술자리에서도 직업정신이 발휘돼 술을 「마시는」게 아니라 「술맛을점검」하는 직업병(?)이 생기곤했으나 이제는 술마시는 분위기를누릴수 있게 됐다는 그녀가 강조하는 술철학이다.
◇진로종합연구소 주류연구실 韓경림(37)대리=매일 와인(포도주)한병은 마신다.국내에서 몇안되는 와인 연구원인 그녀는 하루일과를 와인에서 시작해 와인으로 끝낸다.
몽블르.그랑주아(샴페인).듀엣.와인쿨러등 진로에서 나오는 와인종류 일체의 품질관리는 물론 외국의 와인에 대한 분석에서부터신제품개발.발효실험.시음에 이르기까지 진로의 포도주생산 전과정을 책임지고 있으니 매일 마시지 않을수 없다.그 래서 이제는 2백여가지나 되는 세계 각국의 포도주를 냄새만으로도 구별할 수있는 와인박사가 됐다.
그녀의 술인생은 대학졸업후 잠시 교직생활을 하다가 사표쓰고 다른 일을 찾던중 서점에서 우연히 술관련 책이 눈에 띈게 계기.양조장집 외손녀였던 그녀는 그책을 읽고난후 술공부하러 독일 비스바덴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비스바덴대학은 포도주에 관한한 세계적 권위를 가진 대학으로 여기에서 와인 제조기법을 6년간 공부하고 석사과정을 마친 뒤 89년 귀국,곧바로 진로에 스카우트됐다.
어떤 포도주가 좋은 포도주냐는 질문에 『산도(酸度)와 당도(糖度).알콜도수 뿐아니라 떫은 맛을 내는 폴리페놀이 잘 배합된게 좋은 와인』이라고 대답한 그녀는 『포도주를 매일 마시니 피부도 좋아지는 것같다』며 웃는다.
◇조선맥주 품질관리과 김희영(27)씨=『자,한잔 합시다.오늘아침에 첫 생산된 맥주입니다.』 오전8시에 출근하면 이처럼 동료 직원들과 함께 그날 첫 생산된 맥주의 관능검사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경희대 식품공학과 출신인 그녀는 입사 초기 독실한 크리스천인집안 식구들이 「웬 술회사냐」며 펄쩍 뛰어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직업이니 좋게 봐달라」고 설득해 넘어갔다.
품질관리과에서 맡은 직책은 맥주보리를 당액으로 만드는 제즙공정의 관리 및 당액분석 업무.당액은 맥주 맛을 결정하는 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데 술도 못마시는 여자가 매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맛테스트를 위해 맥주 한컵씩은 마셔야 하니 곤욕이었지만 품질관리과의 홍일점으로 동료 남자직원들에게 지지 않겠다는 자존심 때문에 더 「열심히」 마시며 제품공장과 실험실을 오갔다.
활달하고 웃음이 많은 그녀는 처음엔 맛보기 위해 마신 맥주에취해 웃음을 흘리고 다녀 선배들로부터 「단정치 못하다」고 혼나기 일쑤였는데 요즘엔 여러가지 맥주제품의 미미한 맛 차이까지도정확히 구별해내는 맥주전문가가 됐다.
『맥주는 맥주 고유의 향미와 호프의 쓴맛이 적절히 어울린 것이 제맛』이라고 말하는 그는 『양조학을 좀더 공부해 유럽식 맥주나 미국식이 아닌 한국식 맥주를 개발,세계화시켜보고 싶다』고당찬 의욕을 보인다.
유진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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