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칼럼>'파김치 局面'의 탈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최근 잇단 사회적 충격에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심리적 타격을받았을게 틀림없다.수해(水害)다,경제난국이다 하여 가뜩이나 사기가 꺾이고 기분들이 저상(沮喪)해 있었는데 한총련의 연세대 사태까지 터졌으니 타격이 더 클 수 밖에 없다.
생각해 보라.곧 선진국이 된다는 나라에서 수만 경찰과 학생이무려 9일에 걸쳐 수도 한복판에서 전쟁아닌 전쟁을 벌였으니 이런 황당한 일도 있을 수 있는가.화염병과 쇠파이프와 최루탄,폐허가 된 학교건물과 교정,줄지어 연행되는 수천의 학생들,이런 광경을 직접 눈으로,TV로 지켜본 사람들의 기분이나 정신상태가어떻게 되겠는가.
복잡한 논리를 따질 것도 없이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 됐는가」「이나라가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하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는 것이다.사람마다 겉으로는 멀쩡해도 이런 충격을 받고나면 뭐라고 할까,정신적으로 축 늘어진다고 할까,파김치 가 된다고 할까,그런 상태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지금 우리는 어쩌면 「집단적 파김치」상태에 빠져있는지도 모를 일이다.요즘 많은 사람들이 『일할 의욕이 안 난다』『재미가 없다』고 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런 지극히 비정상적이고 우려할 사회분위기가 오래 지속돼서 안됨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뭔가 굿판이라도 한번 크게 벌여 이 침체되고 울적한 분위기를 씻어내고 사회분위기를 다시 정상으로 되돌려야 한다.
그러자면 가장 먼저 이런 상황을 만든 당사자인 한총련에서 회답이 나와야 한다.잘못된 이념과,잘못된 목표와,잘못된 투쟁방식을 국민에게 사과하고 청산한다는 말을 해야 한다.달아난 간부는숨어 있을게 아니라 나와서 저지른 일에 대한 대 가를 떳떳이 받아야 하고,풀려난 학생들은 하다못해 연세대에 가서 자발적으로청소라도 거들어야 한다.그래야 국민의 맺힌 마음이 좀 풀릴 수있고 다시는 이런 재앙이 되풀이 되지 않으리라는 사회적 확신도가능해질 것이다.
정부가 해야 할 몫도 있다.5천여명의 대학생을 연행하는 사태가 발생했다면 그 경위나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정부에 책임이 없을 수 없다.
사태가 그 지경이 되도록 한 치안의 책임,학생들이 그런 행동을 한데 따른 교육의 책임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내각책임제를 하는 나라라면 벌써 내각인책론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경찰로서는 진압에 엄청난 고생을 했지만 수고한 것과 책임지는것과는 별개의 문제다.사표를 내고 되돌려 받는 「통과의례」라도있어야 분위기가 정상으로 돌아오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부 스스로 분위기를 쇄신하고 심기일전(心機一轉)하는 모습을 보여야 사회분위기도 달라질 것이다.나라에 큰 일이 터져도 정부의 모습은 그대로라면 국민이 믿고 따를 수가 없다.정부부터 긴장된 분위기,난국에 대응해 바 쁘고 긴박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가령 분위기 침체의 가장 큰 원인이 경제불안에 있는데도 정부에서 아무런 회답이 나오지 않는것은 이상한 일이다.얼마 동안만 참으라든가,좀더 열심히 일하자든가,무슨 말이 있어야 할게 아닌가.
국민에게 일정한 희생을 호소해도 좋다.대신 얼마만큼 희생하면경제회복이 가능하다는 청사진을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사회분위기를 바꾸고 다시 국민의 기대를 모을 수 있는 정부의 종합경제대책 같은 것이 나와야 한다.
곰곰 따져보니 오늘로 金대통령의 임기가 더도 덜도 아닌 꼭 1년반이 남았다.1년반이란 기간은 중앙에서 새로 구상하고 계획하고 지시하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이다.이미 세웠던 계획과 내려보냈던 지시가 현장에서,하부(下部)에서 제대로 실 천.추진되고있는지 살피고 독려하기에도 바쁜 기간이다.그런 점에서 대통령서부터 바쁘게 뛰어야 하는 시점에 왔다고 볼 수 있다.
중소기업실태가 어떤지,서민들이 어떻게 사는지 현장에도 가보고그들의 어려움을 직접 들어보기도 해야 한다.국가백년대계라는 경부고속철도와 신공항공사에도 부실이 많다는데 대통령이 직접가서 봐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이처럼 움직여야 내각과 밑의 관료들도 움직이고 일을챙기게 된다.동시에 기업과 국민도 대통령과 정부의 그런 움직임을 주목하면서 변화의 기대감을 가질 수 있다.
지난 3년반이 훌쩍 가버렸듯이 남은 1년반은 너무 짧은 기간이다.새로운 1년반의 전략과 각오로 「파김치」가 된 사회분위기를 일신하고 다시 희망과 의욕을 불러일으켜야 하지 않겠는가.
(논설실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