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보이면 된다” 충성심이 승진 기준 될 수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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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경쟁력은 공무원 경쟁력이고, 경험상 모든 건 인사 시스템에서 나옵니다. 조직을 다스리는 원리는 경쟁이어야 하고, 그래야 경쟁력이 생깁니다.”

9일 저녁 만난 오세훈 서울시장은 “모든 건 인사시스템에서 나온다”며 이같이 역설했다. 3시간에 걸친 간담회에서 오 시장은 서울시의 인사개혁을 중심으로 대화를 끌어갔다. 다른 시·도지사들이 대개 ‘지역발전’이나 ‘규제완화’를 화두로 했던 것과는 달랐다.

‘인사청탁이 많지 않았느냐’는 질문엔 “전화 온 건 잔뜩 쌓여 있지만 단 한 번도 (청탁을) 들어준 적이 없다. 1%의 미안함이나 켕기는 마음이 없다”고 대답했다.

오 시장과의 만남은 ‘지방이 국가 경쟁력’ 시리즈를 위한 16개 시·도지사의 릴레이 인터뷰 중 마지막 순서였다. 서울을 ‘지방’으로 분류할 수 있느냐는 일부 지적이 있지만 서울이 가장 경쟁력 있는 지방자치단체라는 점을 고려해 포함시켰다.

-지난해 도입한 ‘공무원 철밥통 깨기’는 신선한 충격을 줬다.

“2006년 7월 취임하면서 봤더니 직원들이 전화도 잘 받지 않고, 심지어 코드를 빼놓은 직원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을 퇴출 후보로 골라내 현장시정지원단에 보냈다. 서울시의 청렴도 순위가 크게 높아진 것도 걸리면 퇴출된다는 긴장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4월 무능하고 나태한 공무원을 골라 실·국별로 3%씩 ‘퇴출 후보’로 선정했다. 퇴출 후보로 선정된 102명 중 58명만 6개월의 재교육을 거쳐 현업에 복귀했다. 올 4월에도 88명이 현장시정지원단에 뽑혀 현재 재교육을 받고 있다.

-승진에선 과감한 발탁인사를 했는데.

“올해부터 연공서열에 관계없이 능력 있는 직원을 발탁하는 ‘패스트 트랙’을 시행했다. 6급(주사)이 된 지 6년5개월 만에 5급 사무관으로 승진하는 직원도 나왔다. 공직사회에선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승진에 임박하면 일은 하지 않고 고시원에 들어가 시험공부에 매달리는 폐단이 사라졌다.”

서울시는 올 2월 대대적인 승진인사를 단행했다. 행정직 6급이던 김귀동(49)씨는 6년5개월 만에 5급으로 승진했다. 서울시 역사상 최단 기간의 승진 기록이다. 김씨 외에도 ‘6급에서 10년 이상 근무’라는 관행을 깨고 발탁 승진한 사람은 24명이다. 전체 승진자 43명의 56%다.

-시장에게 잘 보인 직원만 승진한다는 식의 뒷말은 없었나.


“나한테만 ‘잘 보이면 된다’는 충성심이 인사·승진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사실 보스에겐 충성심도 중요하다. 지역별·라인별로 균형을 맞추는 ‘탕평인사’를 하지도 않았다. ‘상시기록평가제’라는 공정한 평가 시스템 덕분이다. 싫어도 바뀐 시스템에 적응해야 한다.”

오 시장은 지난해부터 매달 직원들의 업무실적을 평가하는 ‘상시기록평가제’를 도입했다. 그래서 직원들 사이에선 ‘상사의 눈 밖에 나면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는 불신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시장선거를 치르며 챙겨줘야 하는 사람은 없나.

“인사 청탁을 들어주면 (개혁은) 한 방에 무너진다. 2006년 지방선거에 갑자기 나왔는데 당시 속시원히 밀어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숟가락만 얹은 사람이 태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사개혁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이 많다.

“사실 ‘폭동 1보 직전’이란 말까지 나온다. 직원들이 너무 힘들어 하는 것 같아 조금 풀어주려고 한다. 이게 현실의 벽에 부딪혀 무너지는, 후퇴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결코 아니다. 시행착오는 고쳐 나가겠지만 개혁의 근간을 흔드는 일은 없다. 아직 2년이나 남았으니 풀었다가 조이면 된다.”

-‘오세훈 브랜드’가 없다는 평가도 있다.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겠다는 말도 들었다. 하드웨어(개발) 하나에 초점 맞추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대신 ‘창의시정’이란 말로 공무원 조직을 다그치고 있다. 직원들의 학습 조직인 창의시정 동아리도 300여 개나 생겼는데,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오 시장은 디자인·문화·생활시정이란 말을 번갈아 쓰며 소프트웨어의 변화를 강조한다. 공무원들에 대해선 창의시정이란 말로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요구하고 있다.

-장기전세주택은 어떻게 한 것인가.

“취임 초 여야 간에 반값 아파트 논쟁이 붙었는데, 모두 본질을 외면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프트(장기전세주택)를 검토해 보라고 주택국에 시켰는데 의외로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주택이 재테크의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확고하다.”

집 없는 서민이 최장 20년까지 이사 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장기전세주택은 오 시장의 히트상품이다. 기존 임대아파트와 달리 월 임대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전세형이고, 보증금은 시세에 비해 싸다. 

주정완·성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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