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특집] 우리 마을 이장님은 스물아홉이래요 ③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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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단맛

토란 잎을 머리에 꽂은 수연이. 오미자. 꽃보다 예쁜 아내 채공주씨. (위부터)

지난주 목요일 하 이장을 만나던 날, 아내 공주씨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무안해진 하 이장이 설명을 했다. 아침에 들른 읍내의 병원에서 둘째가 엄마를 닮은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단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집에 와서도 공주씨는 내내 울었다. 편찮은 아버지에게 손자를 안겨드리고 싶었단다. 보아하니 진심이었다. 며느리가 또 딸이라고 많이 울었다는데요, 하고 다음날 마당에서 고추를 다듬는 시어머니에게 물었다. 시어머니는, 아이고 내가 아들 둘을 키워봐서 안다며 손자 바라는 마음이 전혀 없단다. 말하는 투로 보아 그도 진심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하 이장도 맞장구를 친다. "아들 못 나믄 쪼까낸다고 할 때는 언제고?” 하며 공주씨가 눈을 흘긴다. 미안해진 하 이장, 셋은 낳아야 한다고 했지, 아들을 꼭 낳으란 말은 아니었다고 슬쩍 말을 바꾼다.

안산에서 직장에 다니던 문상씨는 잠시 고향에 내려와 있었다. 공주씨는 문경에 있는 아는 언니네 집에 놀러 와 있었다. 두어 다리 건넌 소개로 두 사람이 만났다. 2003년 4월 어느 날이었다. 문상씨는 귀엽고 수더분한 공주씨가 마음에 들었다. 공주씨는 성격 시원한 문상씨가 좋았다. 둘이 포항에 내려가 살다가 문상씨가 이거도 해주고 저거도 해주고 하여튼 뭐든 다 해주겠다며 고향으로 가자고 했을 때, 공주씨는 그게 다 헛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듬직한 문상씨를 믿었다.

시골 생활은 불편했다. 재래식 화장실도, 샤워할 곳이 마땅찮은 것도 그랬지만 정작 힘든 건 완고한 동네 분위기였다. 부부유별을 중시하는 어른들은 ‘풍기문란’을 봐 넘기지 못했다. 눈치 모르고 민소매나 반바지를 입고 나서는 공주씨가 아버지의 눈에 뜨일까 봐, 문상씨는 어머니의 몸뻬를 입히기도 했다. 어른들 다 주무시는 밤에야 손잡고 동네를 거닐 수 있었다. 그리하며 시골 생활에 익숙해진 공주씨, 이제는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지낸다. 만날 놀러 다니는데 뭐 칭찬할 게 있느냐며 남편 흉보는 아내의 입에 문상씨는 새벽에 따온 올 첫 송이를 넣어준다. “그래도 우리 신랑이 좀 생겼지예?” 하는 공주씨, 문상씨는 믿어주고 따라주는 공주씨가 고맙다. 그런 아내가 있어 복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의 지프차 뒤 번호는 7373이다. 운칠기삼(運七技三). 꽃 같은 아내를 ‘운칠’로 만난 문상씨는 ‘기삼’으로 달콤한 사랑을 얻었다.

올봄 아내에게 정식으로 면사포를 씌워줄 참이었던 문상씨, 아버지가 쓰러지는 바람에 그날을 미뤘다.

6.씩씩한 청년 하문상

“직장에 다닐 때 돈을 제법 받았지예, 다 뿌리치고 들어왔다 아입니꺼, 우리 농촌 이리 가면 다 망합니더, 젊은 놈이 시골에서 성공하는 모델 하나 만들어볼라꼬예, 내 성공하는 거 보믄 젊은 사람들 시골로 많이 들어오지 않겠심꺼.”

내일이면 명절 쇠러 사람들이 오는데 동네 청소나 해야겠다며 씩 웃는 하 이장, 더벅머리 위로 구월 하늘이 높다.

곧 있을 오미자축제 준비에, 내년 2월 태어날 둘째 기대에, 병원에 계신 아버지 걱정에 하 이장의 추석은 바쁘고 기쁘고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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