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특집] 우리 마을 이장님은 스물아홉이래요 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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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매운맛

1월 3일: 오후 송이산 가꾸기(공주랑)

1월 5일: 저녁식사 문제로 엄마와 싸움

차 운전석에 놓여 있는 다이어리(사진)에 하루의 일들이 간단하게 적혀 있다. 1월 17일자엔 소금 신청자 명단이 있고, 그 아래에 ‘동민 여러분. 신청하신 소금이 회관에 와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방송원고가 쓰여 있다. 비어 있는 날짜도 있지만 빼놓지 않고 기록하는 게 있다. 오미자와 관련한 일들이다. 올해는 2년 임기의 황장산오미자작목반 총무까지 맡았다. 이장과 마찬가지로 작목반 총무도 잡일이 여간 많지 않다. 작목반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는 오미자 축제다. 요즘은 9월 20, 21일 동로면 소재지에서 열리는 네 번째 문경오미자축제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 지난해에 2만 명이 넘게 왔다. 오미자는 해발 300m가 넘는 땅이라야 제대로 열매를 맺는다. 산골마을인 이 지역에 딱 맞는 작목이다. 간송리에서 윗동네로 갈수록 해발고도가 높아지며 오미자 밭도 많아진다. 전국 오미자의 45%를 문경에서 생산하는데 그중 80%가 동로면에서 나온다. 작목반에 360여 농가가 들어 있다.

올해는 작황이 예년만 못하다. 꽃이 피는 늦은 봄에 두 번의 서리가 내려서다. 400ha의 재배지 중 120ha가 심한 피해를 보았다. 어느 해보다 축제가 성공해야 하는 이유다. 자기 얘기보다 오미자와 축제 얘기를 많이 써 달라고 부탁하는 하 이장. “간·심장·폐·신장·방광을 보호해 주고예, 기침·천식 가라앉히는 데 좋아 가수들도 마이 마신다 아입니꺼, 숙취와 피부 미용에도 그만입니더….” 하 이장의 오미자 자랑은 끝이 없다. 농가들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 거다. 축제 때 김수희와 배일호도 온다고 귀띔한다. (www.5mija.kr 축제추진위원회 054-554-7555)

하 이장, 체구는 작은데 일하는 건 맵다.

4.쓴맛

지난 4월 27일 아버지가 쓰러졌다. 늦서리 맞아 오미자 꽃이 시들던 날이었다. 이웃집 고추 심어 주고 늦게 집에 왔는데 방에 누워 본체만체하는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기분이 상했다. 한참 지나 이상한 마음에 방문을 열어 보니 아버지가 심상찮았다. 안동의 병원으로 내달렸다. 상태가 나아져 병원을 문경으로 옮겼는데 퇴원 전날 쇼크가 왔다. 그 뒤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는 마흔아홉에 낳은 문상씨를 유독 예뻐한다. 함께 낚시와 사냥을 하고 산에도 다니며 문상씨를 친구처럼 대해왔다. 한국전쟁을 치르고 대위로 예편한 아버지는 지역의 어른이다. 농협조합장·예비군중대장·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지냈고, 향토사연구원이기도 한 아버지, 휘갈겨 쓰는 한문이 일품인 아버지가 문상씨는 자랑스럽다. 쓰러지기 전까지도 지역의 태평양전쟁 피해자들을 국가유공자로 만들려 애쓰던 아버지인데,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은 아버지인데 저렇게 누워 계신다. 몸은 가누지 못하지만 사람은 알아보는 아버지, 머리맡에 아들이 있으면 손을 꼭 잡고 놓지 않는다. 눈가가 젖은 아버지를 보지 못해 아들은 고개를 돌린다. 틈만 나면 병원으로 달려가는 문상씨, 아파도 좋으니 아버지가 옆에만 있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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