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궁 대표팀 맏형 박경모 ‘아버지 하늘에서 보고 계시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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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218점, 이탈리아 225점. 결승전 마지막 한 발을 남겨두고 박경모가 발사대에 섰다. 8점 이상이면 금메달, 7점이면 동점, 6점 이하면 패배한다.

남자 양궁대표팀의 맏형이자 주장인 박경모는 침착하게 활시위를 당겼다. 그의 손을 떠난 화살은 9점 노란 과녁에 꽂혔다. 한국 남자 양궁이 올림픽에서 단체전 3연패를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2남4녀 중 맏아들인 박경모는 그때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 박하용씨를 떠올렸다. 185cm·76kg의 당당한 체격을 물려준 아버지는 그에게 정신적 지주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암과 투병하다 올림픽을 3개월 채 남기지 않고 6월 10일 64세를 일기로 숨졌다. 아들이 베이징 올림픽 2관왕에 오르는 모습을 간절히 보고 싶어하던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숨진 것에 충격 받아 박경모는 한 달 가까이 활을 놓았다.

박경모는 1993년 세계선수권대회와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2관왕에 오른 뒤에도 7년여 동안 긴 터널 속에서 방황했다. 번번이 대표선발전에서 탈락했고, 국내 대회에서도 힘을 쓰지 못했다. 양궁 선수 중에서도 성격이 예민한 편인 데다 활을 쏠 때 시간을 넉넉히 쓰면서 오래 생각하는데, 이런 점을 극복하지 못한 탓이었다.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아버지는 조용히 아들을 지켜보며 성원했다.

박경모는 2001년 국가대표에 다시 뽑히면서 성숙해진 기량을 선보였고,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올림픽 첫 금메달을 따냈다. 자신을 열렬히 응원하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영전에 금메달을 바치겠다는 각오로 훈련에 매진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경모에게 이번 베이징 대회는 마지막 도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올림픽 이후 은퇴해 코치로 변신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11일 열린 단체전에서 어려운 고비에 몰릴 때마다 후배들을 다독이며 이끌었다. 장영술 남자대표팀 감독은 결승전이 끝난 뒤 “필드 안에서 감독 역할을 해준 박경모가 일등공신”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이은경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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