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을 남긴 유도 철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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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녀(鐵女)’의 시대가 갔다. 한때 라이벌로 세계 여자 유도계를 주름잡았던 북한의 계순희(29)와 일본의 다니 료코(谷亮子·33)가 흐르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베이징 올림픽에서 패배의 눈물을 흘렸다.

북한의 체육영웅 계순희는 11일 베이징과기대체육관에서 열린 여자 57㎏급 2라운드(16강전)에서 복병 바바라 하렐(프랑스·31)에게 일격을 당해 탈락했다. 1라운드에서 자브리나 필츠모저(오스트리아)를 한판으로 따돌린 계순희는 힘이 좋은 하렐을 맞아 고전하다 경기 종료 1분여를 남겨놓고 다리들어메치기를 허용해 절반을 빼앗긴 뒤 끝내 만회하지 못했다. 하렐이 3라운드에서 탈락하면서 계순희는 패자전 출전권마저 놓치고 말았다.

‘인민체육가’의 어이없는 패배였다. 올림픽 정상에 서면서 12년 만에 북한에 올림픽 금메달을 안기겠다는 꿈이 물거품이 됐다. 하렐은 아테네올림픽 5위 이외에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선수. 이에 비해 계순희는 16세의 나이로 96애틀랜타올림픽에 출전, 48㎏급에서 84연승을 달리던 일본의 간판 다니 료코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52㎏급으로 체급을 올려 2000년 시드니대회 동메달, 2004 아테네대회 은메달, 세계선수권 4연패 등의 기록을 세웠다.

‘계순희 이겨라’를 외치던 북한 응원단은 예상 밖의 패배에 망연자실했 다. 힘에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던 계순희였지만 하렐과의 파워 대결에서는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밀렸다. 8강 진출이 무산된 계순희는 패배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일본 유도의 아이콘 다니는 9일 48㎏급 준결승에서 탈락해 동메달을 따내는 데 그쳤다. 올림픽 5회 연속 메달 획득이란 기록을 달성했지만 화려한 마무리를 꿈꾸던 그로서는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후퇴를 모르던 다니의 모습은 더 이상 찾기 어려웠다. 두 살 난 아이의 어머니인 다니는 경기 내내 밀어붙이는 전성기 때의 적극성을 더는 보여주지 못했다.

시드니·아테네 대회에서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하고 1993년부터 지난해까지 세계선수권 위업을 다룬 다니. 대회 직전 “라이벌은 나뿐”이라며 금메달을 호언장담했던 다니는 올림픽 3연패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쓸쓸하게 베이징을 떠나게 됐다.

베이징=장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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