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인구 문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대통령이 말한 스파르타 인구 감소 … 그 원인이 중요한 것이죠

“최강의 전성기를 누린 스파르타가 급격히 멸망의 길로 접어든 결정적 원인은 인구 감소였습니다. 우리가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백약이 무효였던 원인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살펴야 합니다.” 어제 윤석열 대통령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며 한 말입니다. 윤 대통령은 스파르타 인구 감소의 이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스파르타가 ‘급격히 멸망의 길로 접어든’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기원전 404년에 끝난 펠레폰네소스 전쟁에서 승리해 전성기를 누리다가 기원전 371년에 이웃 국가 테베가 이끈 연합군을 상대한 레욱트라 전투에서 패배해 패권을 잃었습니다. 군사 강국으로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던 것은 총 100년 정도입니다. 그중 30여 년이 빛났던 시기였고요.

그렇다면 스파르타는 왜 무너졌을까요? 스파르타는 역사적 기록을 거의 남겨 놓지 않았습니다. 아테네인 등이 쓴 글을 통해 스파르타의 역사를 추정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스파르타 인구 감소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헤로도토스가 남긴 책에는 기원전 4세기 중반의 스파르타 남성 시민(자유인)이 8000명이었는데, 레욱트라 전투 시기에는 1000명으로 줄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심각한 인구 감소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스파르타의 총인구가 8분의 1로 준 것은 아닙니다. 지배계급이었던 ‘자유 시민’이 줄었던 것입니다. 역사학자들은 펠레폰네소스 전쟁 시기에는 자유 시민이 약 7% 정도였는데, 레욱트라 전투 시절에는 3% 수준으로 감소한 것으로 봅니다. 스파르타에는 자유 시민, 반(半) 자유인, 노예의 세 계급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자유 시민이 줄어든 것일까요? 스파르타에서 자유 시민이 되는 조건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부모 양쪽이 자유 시민이어야 하고, 남성의 경우엔 ‘전사’ 교육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 ‘스파르타식’ 교육을 말합니다. 7세부터 훈련이 시작됩니다. 그 교육에서 도태되면 ‘반 자유인’으로 신분이 떨어집니다. 훈련(교육) 대열에서 낙오하면 자유로운 시민으로 살 수가 없었습니다. 입시가 생존 투쟁이 된 우리 현실과 비슷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