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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오빠’로 뜬 예비군, 몸던져 시민보호 작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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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밤 11시. 미국 쇠고기 수입 개방을 반대하는 촛불집회ㆍ시위로 7000여명의 시민과 경찰부대원들의 대치가 1시간째 이어졌다. 김원준 남대문경찰서장은 시위대의 해산을 유도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팽팽한 긴장 속에 누구 한명이라도 부상을 당하면 평화적인 가두시위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판이다. 일촉즉발의 순간. 전경과 시민 사이에 2m의 비무장지대가 형성됐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거리로 뛰쳐나온 예비역 100여명이 인간띠를 만들어 완충지대를 만든 것이다.

31일과 1일, 집회ㆍ시위가 심각한 물리적 충돌 양상으로 돌아서면서 일부 시위대의 과격 행동과 경찰의 과잉 대응의 수위가 높아지자 예비군의 할 일이 더욱 많아졌다. 물대포를 쏘는 경찰의 해산 진압에 맞서 시민들의 방패막이가 돼주는 한편 과격한 일부 시위대의 차량 파손을 막기 위해 경찰 호송버스 주위를 에워 싸기도 했다.

실신해 쓰러진 한 시민을 응급치료하는가 하면 버스 정류장 지붕에 오른 시민이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도록 인간 계단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주부들을 감싸며 아이가 다치지 않게 보호했고 잠시 앉아서 쉬고 있는 전경에게 물병을 건내 주기도 했다. ‘복학생’이 아닌 ‘국민오빠’ ‘국민형’ ‘국민아들’로 예비군이 떴다.

◇이들은 어떻게 모였나=예비군 부대는 지난달 말부터 인터넷을 통해 조직적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다음’의 예비군 촛불시위 참가자 모임(http://cafe.daum.net/korea20080526)은 지난달 26일 개설돼 1일 현재까지 2000여명의 회원이 가입했다. 하루 평균 4000여명의 네티즌이 방문해 예비군에게 응원과 격려의 댓글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수도권, 강원권, 충청권 등 6개 권역별로 나눠 조장을 뽑은 뒤 조별로 지휘 통제 체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모임은 ‘우리 예비군은 비폭력으로 국민을 지킨다’는 슬로건 아래 ‘예비군 인간방패부대’ 통지서를 발행하고 집회ㆍ시위 참석시 장갑과 마스크 등을 착용하라는 세세한 작전지침까지 내리고 있었다. 이들은 집회ㆍ시위 참석 후 ‘후기란’을 통해 시민과 경찰을 보호하는데 있어 어떤 점이 잘되고 잘못됐는지 분석하고 다음 작전에 반영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더 평화로운 촛불집회를 이끌어낼지도 고심했다.

◇이들은 왜 나왔나=서울시청에서 스크럼을 짜고 있는 예비군들은 집회ㆍ시위 참가자와 전경 모두를 지키는 것이 예비군의 의무라고 입을 모았다. 이모 씨는 “위험한 시민을 보호하고 질서 유지를 위해 맨 앞으로 나왔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언제 충돌이 일어날지 몰라 부담감이 있지만 위험하다고 생각했으면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폭력 상황이 발생하면 시민을 보호하고 몸으로라도 막겠다”고 말했다.

김모 씨는 “전경을 달래 시민의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정모씨는 “그동안 예비군의 힘을 보여줄 순간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예비군이 하나로 결집해 밖으로 뛰어나올 수 있는 상황에 대해 한양대 이상민(사회학)교수는 “기존의 군복의 이미지는 ‘보수’지만 집회에 참여함으로써 ‘진보’의 색깔을 입는다”며 “군복이 가진 결속과 일체감이 촛불집회를 더욱 힘있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에 대한 반응은=네티즌의 예비군 부대에 대한 반응은 남녀노소 계층을 불문하고 긍정적이었다. 개그 소재로 이용되던 복학생 이미지가 대한민국을 지키는 ‘예비군 오빠’로 급반전된 것이다. 다음은 각종 네티즌 게시판에 올라온 응원 댓글의 일부다.


#같이지켜요 - 어제 늦은 새벽까지 예비군과 함께한 시민입니다. 오늘 해병대 부사관 시험을 보고 왔는데 연행되면 시험을 못 보는데 예비군 덕분에 무사히 치를 수 있었습니다. 시험 잘 보라고 하신 예비군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팍다메 - 감사합니다. 당신들이 있어서 늘 든든하고 힘이 됩니다.
#저시키알바 - 역사의 한 장에 계신 용기있는 예비역님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부디 몸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쥬피터03 - 아들이 전경에 속해 시민들에게 다칠까봐 항상 걱정인데 그래도 예비군 아들들이 지켜준다니 다행이네. 제발 전경이 많이 다치지 않게 좀 도와주시게.
#tt585tt - 지훈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집회에 나갔다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했는데 예비역 분이 주위를 지켜주셔서 안전하게 행진을 할 수 있었어요. 그 분 성함이라고 알고 싶은데 안알려 주시더군요. 어디계시든 화이팅입니다.
#qweㅂㅈㄷ - 학교에서 군대 졸업한 촌스러운 복학생 이미지에서 늠름한 대한의 오빠로 급부상한 걸 축하해요.

◇예비군 모임 현재는=촛불집회ㆍ시위 한 달째, 예비군 활동이 시민의 보호막이로 각광을 받았지만 모임은 지난 1일부터 5일까지 조직적인 활동은 보류하기로 했다. 예비군 사이에서는 “계속 시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과 “인간 바리케이트 때문에 전경과의 대치 상황이 더 과격해진다” “예비역이 연행 대상으로 지목됐다”는 등의 의견으로 나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급기야 1일 오후 4시경 카페엔 ‘긴급 공지’가 떴다.

모임측은 “운동권 학생, 과격한 노조, 선동만 하는 사람 등으로 인해 평화 시위가 과격시위로 변했고 예비군 30여명이 연행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며 “평화 시위를 이끌어 국민을 보호한다는 일념 하에 참자, 당분간은 지켜 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듯 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모임 운영자인 ‘대한민국개구리’는 3일 “공식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시점은 5일 19시로 정하려 한다”고 밝혔다. 5~8일까지 샌드위치 휴일때문에 과격한 충돌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안위보다 어린 학생들과 힘없는 소시민들을 위한 희생을 작전의 우선으로 하려고 한다”며 “어느 때보다 전우분들의 용기와 희생정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인터넷 게시판 등에는 예비군복 착용이 군법 규정에 어긋나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이 이어지고 있다. 국방부측은 “예비군복은 훈련 때가 아니면 입지 않도록 대통령령으로 규정돼 있다”며 “이를 어겼을 땐 법원의 별도 판단에 따라 처벌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글=이지은ㆍ심영규 기자, 사진=심영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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