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 대한 배려’없는 우리 아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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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4월 서울 B초등학교 홍모(33) 교사는 사회시간에 학생 5~6명이 팀을 이뤄 보고서를 만들어보도록 했다. 그런데 학생 한 명이 어울리지 못해 울상을 짓고 있었다. 홍 교사가 아이들에게 ‘왜 함께하지 않느냐’고 묻자 한 학생이 “얘는 아무것도 할 줄 몰라요. 그림도 못 그리고, 글씨도 못 써요”라고 했다. 홍 교사는 “친구를 코앞에 두고 창피를 주는 아이들에게 큰 충격을 받았다”며 “아이들이 친구에 대한 배려는 없고 자신만 좋은 점수를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 H초등학교 이모(28) 교사도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몰라 고민이다. 수학시간에 각도의 원리를 설명하면 학생 28명 중 상당수가 고개를 숙이고 각자 다른 문제를 풀기 때문이다. 이 교사는 “원리에 대해 설명하면 ‘선생님이 뭘 물을지 다 알아요’라는 식으로 말하는 학생도 있다”며 “학원에서 미리 배우는 탓에 수업에 대한 흥미를 잃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초등학생들이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정도가 영국·프랑스·일본 학생들에 비해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학생들의 수업에 대한 흥미도 역시 4개국 중 가장 낮았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전효선 연구팀은 4개국 초등 4년생 2349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2일 발표했다. 국내 73곳과 영국 4곳, 프랑스 4곳, 일본 3곳을 포함해 84곳(주한 외국인 학교 포함) 학생이 대상이었다.

◇외동 많아 자기만 알아=한국 초등학생들은 남을 이해하거나 존중하는 정도가 4개국 중 꼴찌였다. “교실에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을 배우고 실천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학생은 15.9%에 불과했다. 영국과 프랑스 학생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고 일본(28.7%)과도 큰 차이가 났다. 특히 “사회생활에 필요한 질서와 규칙을 배우고 실천한다”고 응답한 학생도 18.4%에 그쳤다. 프랑스·영국·일본과 두세 배 차이를 보인 것이다.

권순달 수원대(교육학) 교수는 “요즘 아이들은 가정에서 외둥이이거나 형제가 적어 남을 위한 배려를 배울 기회가 적다”며 “학교에서도 남을 존중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학생들 “수업 재미없다”=한국 학생들은 학교 수업을 재미없어 했다. ‘수업이 재미있다’고 응답한 학생은 35.2%에 불과했다. 프랑스(55%), 영국(48%), 일본(42.6%) 학생들보다 수업에 흥미가 없는 셈이다. ‘공부하는 것이 좋다’ ‘교실에서 공부할 때 행복하다’고 응답한 학생 비율도 역시 최하위였다. 수업에 흥미가 없다 보니 집중도(16.5%)도 다른 나라 학생들보다 떨어졌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주부 정지인(41)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학원에서 선행 학습을 하는 바람에 수업이 재미없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며 “학교가 학생들의 현실을 교육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효선 연구위원은 “학생 행동을 특성별로 지도하고 수업 흥미도를 높이기 위해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는 다각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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