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아직도 선물 보따리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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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화장품 1천세트,넥타이 5백개,허리가방 1천개,백장미기름 5백병….국민의 대표요,얼굴이라 할 국회의원들이 외국의 상점에서싹쓸이 하듯 무더기로 선물을 사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낯이 뜨겁다. 국회의원들도 사정은 있을 것이다.아직도 여행에서 돌아오면 볼펜 한자루라도 전해야지 맨손으로 인사하기는 왠지 좀 거북하고 민망한 분위기가 남아 있다.또 추석도 얼마 안남았고,총선도 다가오는데 떠오르는 유권자나 사무직원.운동원들도 많 아 선물의 필요성도 느꼈을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무더기 선물반입은 하루 빨리 떨쳐버려야 할 구태(舊態)요,품위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볼썽사나운 짓이다.이러니까 필요한 측면이 있는 국회의원 외유도 도매금으로 비뚤어지게 보게되고,여비마련에 선물까지 사야 하니 자주 뇌물외 유사건이 터져나오게 된다.
또 일반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국회의원이라 해서 그 많은 선물보따리를 무사통관시켰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고가품도,수입금지품도 아니었다 해도 양으로 보아선 분명히 탈법이다.누구보다 법을 잘 지켜야 할 국회의원으로선 어느 모로 보나 할 일이 아닌 것이다.
나라 안팎으로 창피하기 짝이 없는 이런 행태는 공동으로 자정(自淨)선언이라도 해서 끝장내야 한다.혼자서만 선물 안하기가 어려운 풍토라면 공동의 약속과 선언이 근절의 방법이 될 수 있다.윤리위를 특별위원회로 두고 있고,국회규칙으로 의원윤리실천규범까지 마련해놓고서도 폐습을 되풀이한대서야 국회의 권위가 바로설 수 없다.선거풍토의 개선이 이 시대의 과제가 아닌가.선거구민에게 선물을 건네는 풍습부터 뿌리뽑아야 한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이 품위를 지키고,뇌물에 약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유권자들도 의식과 관념을 바꿔야 한다.볼펜 한자루라도 받지 않으면 섭섭해하기 때문에 선물보따리가 필요해지는 측면도 있다.의원들만 비난할게 아니라 유권자라는 이유로 은 근히 뭔가를바라고 대접받으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국회의원들의 폐습을 막는데는 국민들이 해야 할 몫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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