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의 21년 그룹 시가총액 ‘1조 → 140조’ 글로벌 기업 일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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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이 1987년 12월 1일 취임식장에서 삼성기를 흔들고 있다. 오른쪽은 깃발을 이 회장에게 전달한 최관식 당시 삼성중공업 사장. [중앙포토]

이건희 삼성 회장이 스스로를 던졌다. 예상을 뒤엎고 전격 퇴진한 것이다. 고 이병철 선대 회장의 뒤를 이어 1987년 12월 1일 삼성 총수에 오른 지 20년4개월 만이다.

이 회장이 이끈 21년은 삼성이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한 시기다. 삼성은 그 전에 국내 정상 기업이었으나 세계 시장에서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제2 창업을 선언해 초일류 기업과 조 단위의 순익 실현을 다짐했다. 이것이 쉽게 실현될 수 있다고 믿은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이 회장은 이 약속을 지켰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 경영의 고비 때마다 이런 화두를 던지며 삼성의 글로벌화에 매진한 덕분이다. 취임 당시 14조원이던 그룹 매출은 2006년 말 152조원으로 11배 늘었다. 이익은 1900억원에서 14조2000억으로 75배,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140조원으로 140배 증가했다. 삼성은 반도체와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휴대전화·모니터 분야에서 세계 1위 제품을 만들어냈다. 브랜드 가치도 껑충 뛰어올라 지난해 세계 21위(169억 달러)로 글로벌 기업들과 어깨를 견줬다. 간판기업인 삼성전자는 2002년에 시가총액, 2005년에는 브랜드 가치에서 소니를 앞질러 명실상부 세계 최고 전자업체로 자리매김했다.

삼성은 1997년 외환위기로 숱한 대기업이 사라지는 와중에도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감내하며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외형 성장을 추구하면서도 선진 경영시스템을 도입해 삼성의 경영체질을 강화한 것이다.

삼성의 성공에는 이 회장의 카리스마와 리더십이 작용했다는 데 큰 이견이 없다. 특히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를 통해 계열사 경영을 조정하는 삼성의 경영 시스템은 그룹의 급성장과 관련해 관심의 표적이 됐다.

이 회장은 고비마다 시류에 걸맞은 개혁 정신을 설파해 삼성의 경영체질을 바꿔 놨다는 평가를 받는다. ‘질(質) 경영’으로 대변되는 ‘신경영 선언’이 그중 하나다. 이 회장은 변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힘들지만 환골탈태하면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다는 평범한 교훈을 재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던졌다.

또 “앞으로 20년이 더 걱정이다” “정신 차려야 한다. 5년, 10년 뒤에는 혼란이 올 수 있다” “중국은 쫓아오고 일본은 앞서가 한국은 샌드위치 신세다” 같은 위기 경고와 샌드위치론으로 변화와 혁신을 강조해 우리 사회 전반에 경각심을 불어넣기도 했다.

이 회장의 경영성과는 이뿐이 아니다. 반도체가 우리 문화적 특성에 부합하는 미래 필수 산업이라 판단해 74년 불모지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반도체 사업에 착수해 한국이 전자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토대를 닦았다. 이후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과감한 투자로 84년 64메가 D램을 개발했다.

92년에는 D램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하고 2001년에는 세계 최초로 4기가 D램 개발에 성공했다.

또 2005년 4월 이탈리아‘ 밀라노 디자인 회의’에서는 “명실공히 월드 프리미엄 제품이 되기 위해서는 디자인 브랜드 등 소프트경쟁력을 강화해 기능과 기술은 물론 감성의 벽까지 모두 넘어서야 한다”며 디자인 경영을 강조했다. 이후 재계에는 디자인 경영 바람이 불기도 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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