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초 500개 모이면 차 한 대 ‘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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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도요타시에 위치한 쓰쓰미 도요타 공장은 한가한 소도시의 비교적 허름해 보이는 외관을 하고 있었다. 한국의 자동차 공장에 비하면 조경도 소박했고, 유휴부지도 훨씬 적었다. 공장 내부는 쾌적하고 깔끔하다기보다는 분주하고 다소 좁아 보였다. 좁은 공장 한쪽에 방문객을 위한 통로가 겨우 마련돼 있는 정도다.

좁은 통로로 한국과 중국 방문객이 계속 관람을 하지만 도요타 직원들은 그저 라인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자동차 전장을 조립하는 라인에 있는 근로자는 좀처럼 허리를 펴지 않았다. 라인을 따라 흘러오는 자동차를 하나 조립하고 나면 연이어 다음 자동차가 다시 흘러오기 때문이다.

작업자의 동선을 최소화하기 위해 작업자가 쓰는 공구 박스도 함께 움직일 수 있도록 했다. 도요타의 혁신은 거창하지 않다. 반 발짝만 옮기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동선을 개선하고, 허리 굽힘을 덜하게 해 작업시간을 0.1초 단축하는 것이다.

이렇게 개선된 500개의 0.1초는 결국 자동차 1대를 더 만들 수 있는 시간으로 되돌아온다. 작은 개선을 통해 1000만원짜리 차 한 대를 추가 투자 없이 더 만든 셈이다. 동행한 도요타 관계자는 “오전에는 2시간에 10분, 오후에는 1시간 30분에 10분씩 휴식시간이 주어진다”고 말했다.

현존하는 최고의 원가절감형 생산방식인 도요타식 생산방식(TPS)의 핵심은 ‘헛일’을 줄이는 것이다. 헛일은 무엇일까? ‘고객이 없는 일’이다. TPS의 창시자인 오노 다이이치 도요타 자동차 부사장의 정의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나무에 못을 박을 때 못을 잡고, 못을 나무에 대고, 망치를 위로 드는 것은 도요타식으로 보면 ‘헛일’이다. 오로지 망치가 못에 닿아 못이 나무에 박히는 순간만이 ‘일’이다. 고객은 나무에 못이 박힌 것에 대해 돈을 줄 뿐이지 그 앞의 준비작업은 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준비작업에도 돈을 준다면 근로자들은 더 많은 준비작업을 할 것이고, 고객의 지불 금액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고객은 그렇게 관대하지 않다. 제품가격이 점점 내려가는 것도 고객들이 일과 헛일을 점점 잘 구분해 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도요타식 생산방식인 낭비 제거, 가이젠(改善)은 이런 인식에서 시작된다. 이 때문에 헛일에 해당하는 준비작업, 내부관리 작업을 줄일수록 회사의 매출은 올라간다. 그래서 도요타에는 생산계획, 자재구매, 품질검사, 재고관리 등의 일이 없다. 헛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은 단지 회사 내부의 일일 뿐이지 고객과는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헛일’은 돈 안 되고 고객과 관계없는 일

이런 헛일을 줄이기 위해 도요타는 역발상을 시작했다. 생산계획을 없애려면 팔리는 물건만 만들면 된다. 도요타는 고객 요구에 따라 생산량을 조절하고, 생산 리드타임을 최소화하는 적시생산(JIT)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적시생산 때문에 도요타는 생산계획을 없앨 수 있었다.

이를 위해 자재구매에서 가이젠이 일어났다. 일괄적으로 자재를 쌓아놓고, 재고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자재를 그때그때 부품 업체로부터 조달하는 것이다.

간반(看板)시스템이라 불리는 도요타의 자재구매 방식은 사실상 주문형 생산과 유사하다. 필요한 부품을 적은 종이가 붙어 있는 박스가 1시간마다 계속 순환한다. 생산라인에서 부품이 필요하면 종이만 놓고 박스를 가져간다. 그러면 부품 업체 직원이 그 종이를 수거해 가서 다시 한 박스를 채워놓는 식이다. 작업자가 부품을 직접 주문하는 셈이다.

모든 부품이 이런 식으로 소규모로, 작업자가 바로 가져다 쓸 수 있을 만큼만 공급된다. 부품창고나 자재창고는 아예 없다. 이 때문에 도요타의 표준 재고량은 2시간 작업분량밖에 없다. 이 시스템은 1차 협력업체는 물론이고, 2·3차 업체까지 같은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협력업체의 표준 재고량은 4시간 분량이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도요타의 협력업체가 될 자격이 없다.

작년 성과급 1인당 253만 엔

품질검사 역시 별도 부서가 없다. 생산자가 바로 품질검사를 하는 식이다. 별도로 품질검사 부서를 두면 불량률이 오히려 늘어나기 때문이다. 불량품 생산방지를 통한 원가절감은 이렇게 가능한 것이다.

들어오는 자재에 대한 품질검사도 없다. 작업자가 쓴 것만 부품업체에 돈을 주기 때문에 쓰지 않고 남아있거나 돌려준 것은 그대로 불량품 처리된다. 적시생산이라 당연히 재고관리 부서나 재고 창고가 없다. 시장의 수요에 맞춘 생산이기 때문에 재고를 쌓아둘 장소가 아예 없는 것이다.

도요타는 기존 대형 공장에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런 프로세스를 없앰으로써 품질 경쟁력과 함께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구조적 낭비 제거와 함께 작업자들의 동작을 개선하거나, 선반의 위치, 작업공구의 위치를 개선해 0.1초씩 작업시간을 줄이는 조그마한 개선을 통해 세계 1위의 자동차 기업으로 우뚝 선 것이다.

이런 도요타식 개선은 단순히 프로세스를 따라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도요타식 생산방식은 그저 CEO가 지시하면 되는 그런 행사가 아니다. 사원들의 자발적인 개선의지, 과학적인 개선방식, 노사 간에 믿고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전제돼야 한다.

헛일을 줄이는 도요타식 가이젠은 한편으로 노동 강도를 상승시킨다. 대신 도요타는 매년 엄청난 성과급을 지급함으로써 ‘일’에 대해 보상한다. 지난해 도요타는 253만 엔의 일시금(성과급)을 지급했다. 또 도요타는 기본적으로 종신고용으로 종업원의 충성을 이끌어 내고 있다.

종신고용된 도요타 직원들은 사실상 주주의 입장에서 회사의 경영을 이해한다. 도요타 자동차의 상무인 아카타 데쓰오는 “물건 만들기의 마지막은 사람 만들기다”고까지 말했다. 도요타식 사람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도요타식 경영도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도요타가 본 7대 낭비

■ 과잉생산의 낭비 - 놀지 않고 계속 일하는 것도 낭비다
■ 운반의 낭비 - 불합리한 레이아웃으로 대기시간이 생긴다
■ 가공 그 자체의 낭비 - 과연 그 작업이 진짜 필요한가
■ 동작의 낭비 - 불필요한 동작이나 동선은 생산성 떨어뜨린다 
■ 대기의 낭비 - 기계 작동을 감시하는 것은 일이 아니다
■ 재고의 낭비 - 모든 재고는 낭비, 재고는 적을수록 좋다
■ 불량의 낭비 - 불량은 고객과 기회의 손실을 가져온다

한국의 도요타 삼원정공

지독한 아날로그, 그래도 효과 만점

서울 성수동에 있는 용수철 생산업체인 삼원정공엔 없는 것이 많다. 사장실이 없고, 사무실엔 그 흔한 에어컨도 없다. 책상도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철제 사각책상이다. 형광등은 책상 위에 하나씩 설치돼 있어 직원이 들어와 일할 때 켜고, 나갈 때 끄게 돼 있다. 모든 사무실 문 옆에는 자석으로 된 행선지 판이 있다.

사무실에 있다가 외부로 나가면 자기 이름이 쓰인 자석을 행선지 쪽에 붙인다. 화장실 앞에도 자석판이 있다. 들어가는 순서대로 자석을 붙이고 마지막에 나온 사람이 자석을 떼면서 불을 끈다. 지독한 아날로그식 방법이지만 어떤 인텔리전트 빌딩보다 더 빨리 행선지를 알아낼 수 있고 전기도 아낄 수 있다.

중소기업이지만 이미 9년 전부터 격주 토요 휴무를 실시했고, 2005년부터는 주 5일제 근무를 했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삼원정공은 세상과 다른 달력을 쓴다. 삼원정공은 제조 그룹별로 자체적으로 제작한 달력을 나눠준다.

예를 들면 제조 A그룹은 일요일과 토요일·설날은 쉬고, B그룹은 수요일·목요일·추석에 쉰다. 근무시간은 연간 2000시간. 누구도 이 시간을 초과해 근무할 수 없다. 90년대 초반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삼원정공에서 배우라”고 했던 주인공이다.

낭비제거, 원가절감의 대표적 기업으로 꼽히는 삼원정공도 요즘 가파르게 오르는 원가 때문에 1990년대부터 했던 ‘사력 0.01 운동(사력을 다해 1%의 낭비요소를 찾아내는 운동)’을 다시 전사적으로 하고 있다. 20년 가까이 원가절감을 해 왔는데 아직도 할 게 남아 있을까?

양용식 삼원정공 사장은 “원가절감을 더 이상 못하는 기업은 반드시 망한다”고 단언했다. 양 사장은 “비용을 줄이는 게 아니라 낭비를 찾아내서 수치로 관리하는 것이 원가절감”이라고 했다.

실제 삼원정공은 형광등 끄기, 잔반 줄이기부터 시작해 생산공정 개선, 생산성 혁신 제안 등 다양한 원가절감을 매년 실천하고 있다. 대표적인 원가절감 운동 중 하나인 ‘OS운동’은 공구를 제자리에 갖다 놓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공구를 ‘찾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가지러’ 감으로써 시간 낭비를 줄이고, 불량률이나 사고율도 줄였다. 또 초 관리 운동은 직원들의 근무시간을 초 단위로 분석해 일하는 시간을 최대한 능률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양 사장은 “이런 낭비 제거 덕에 중소기업으로선 가장 먼저 주 5일 근무를 시작했고, 남는 이익으로 올해부터는 대학생 자녀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립대처럼 사립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등록금이 싼 학교는 차액을 직원자녀에게 특별 장학금으로 지급한다. 대학 자녀가 두 명 있는 직원은 1년에 1600만원을 더 가져가는 셈이다. 이렇게 원가절감으로 생긴 이익을 직원에게 돌려줌으로써 원가절감, 낭비 제거에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삼원정공은 공장 간 생산성도 관리해 월급에 차등을 둘 정도다. 양 사장은 “경영이란 쓸 데 쓰고, 쓰지 말아야 할 데 안 쓰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정리했다.

도요타시=이석호 기자[lukoo@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 9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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