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헌법재판소를 압박하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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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 이후 헌법재판소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면서 헌재가 몸살을 앓고 있다. 홈페이지에 탄핵 찬반 의견이 폭주하는가 하면 재판관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언론에 중계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직후부터 헌재의 홈페이지에 네티즌들이 몰려 심각한 접속 지연 사태를 빚었다고 한다. 하루 1000명가량이던 접속자 수가 7만명까지 늘어나고 자유게시판인 '헌법재판소에 바란다' 코너엔 사흘 만에 5000여건의 글이 올라 있으니 탄핵 심판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만하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국가에서 어떤 현안에 관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일은 국민의 권리 중 하나다. 또 그 내용이 범법적인 것이 아니라면 적극 권장하고 보호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그것이 심리 중인 사건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거나 결과적으로 영향을 미칠 정도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어떤 재판이든 법관과 재판관이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서만 판단을 내려야 하는 탓이다.

盧대통령 탄핵 심판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따라서 그 어느 사건보다도 법과 원칙이 준수돼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권이든 특정 집단이든 헌재 심리에 영향을 미치려 해선 안 된다. 그런 점에서 국회의 탄핵안 가결 직후 盧대통령이 "헌재는 법적인 판단을 하는 만큼 정치적 판단과는 다를 것이다. 결론이 (국회와는) 다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한 것은 부적절했다. 여야 지도부가 헌재 결정 시기를 둘러싸고 왈가왈부하는 것도 옳지 않다. 언론 역시 혼란을 부추길 수 있는 성급한 추측 보도 등을 자제해야 함은 물론이다.

헌법재판소는 정치권이나 여론 등 외부의 의견에 흔들림 없이 이번 사건을 공정하게 심리해야 한다. 총선 등 정치일정도 고려할 필요가 없다. 시민들도 헌재의 공정한 심판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지나친 의견 표출이나 과격행위 등은 자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