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국작가회의’ 이름 간다고 새 단체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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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민족문학작가회의가 ‘한국작가회의’로 이름을 바꾸고 새 출발 했다. ‘아시아·아프리카 작가들과의 교류가 시작됐고 이주노동자, 결혼이민 여성이 우리의 가족이 돼 가는 현실 속에서 우리의 문학적 관심이 민족 내부의 문제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출범선언문에서 밝히고 있다. 이런 명칭 변경이 시대 변화의 반영인지 아니면 또 다른 정치적 기회의 모색인지 두고 볼 일이다. ‘민족문학’이란 단어에는 북한식의 ‘민족’ 지상주의의 냄새가 물씬 났었기 때문이다. ‘민족’ 명칭을 쓴 것이 그때의 정치적 지향성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단체는 ‘명실상부하게 한국의 문학을 대표하는 문인들이 모여 있는 단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자유정신을 가진 작가들이 왜 이런 단체를 조직하여 세를 규합해야 하는가? 이 단체가 지녔던 내부의 병폐는 치유됐는가?

 그 대표적인 병폐가 친북 편향과 과도한 정파성이다. 지난해 북한이 핵실험을 저질렀을 때 작가회의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는가. 원로시인 정현종이 핵실험을 개탄하는 시를 토해냈는데도 고개를 외로 꼬고 가만히들 앉아 있지 않았는가. 기껏해야 ‘북은 추가 핵실험을 자제하고 6자회담에 즉시 복귀하며 미국은 성실하고 진지하게 대화에 임하라’는 어정쩡한 양비론을 내놓았을 뿐이다.

 이문열이 현대판 분서갱유(焚書坑儒)에 해당하는 ‘책 장례식’을 당했을 때는 또 어땠는가. 북한 핵실험에는 그렇게도 이해심을 발휘하면서 생각이 다른 동료 문인에게 가해진 정신적 테러에는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지난달 말 작가회의의 산파역이자 원로인 몇몇 인사가 ‘정교하고 효율적인 정치공학을 통해 최대한의 연합세력을 달성하라’며 반(反)한나라당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는 성명에 참여한 일을 작가회의 구성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이름만 바꾸면 무엇 하나. 잘못된 행태도 바뀌어야 한다. 이름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북한 핵과 인권에도 발언해야 하고, 무엇보다 낡고 좁은 이념적·정파적 체질에서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