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상기자의맛집풍경] 경기도 안산 '정든닭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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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맛은 맛이 아니다. 괴변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렇다. 맛은 혀로 느낀다. 신맛(酸)·쓴맛(苦)·단맛(甘)·짠맛(鹹)이 그렇다. 매운맛은 혀로 느끼지 못한다. 혀가 느끼는 아픈 감각(통각·痛覺)이 매운맛이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 사귀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일단 맛을 들이면 끊기 어려운 중독성을 보인다. 친숙해지면 그 맛을 확실히 즐기기 위해 더 강한 자극을 찾기까지 한다.

 경기도 안산 중앙역 건너편의 먹자골목에 ‘정든닭발(031-405-2880)’이 있다. 상호를 풀이하면 닭발에 정이 든다는 뜻이다. 닭다리도 아닌 닭발에 정이 들면 얼마나 들까. 그래도 닭다리를 멋지게 해내는 레스토랑보다 열성 팬이 많다. ‘맛도 아닌’ 매운맛을 찾아오는 이들이다.

 자리에 앉으니 일회용 비닐장갑과 누런 종이를 한 장 내준다. 식탁 위에 종이를 펴고, 한 손에 비닐장갑을 낀다. 식사 준비 전 태세를 갖추는 것 같다. 기다리던 전투 상대 닭발이 한 접시 올라온다. 고춧가루 양념에 버무려 시뻘겋게 구웠다. 젓가락으로 집을 엄두가 안 난다. 비닐장갑을 낀 이유를 알 만하다. 생긴 꼴은 거부감이 들어도 불에 바로 구운 냄새가 향긋하다. 입에 닿자마자 파팍 불꽃이 뛴다. 입 주위, 혀끝, 입 안 구석구석까지 닭발이 닿는 곳마다 짜릿한 고통의 연속이다. “아이고, 매워” “입 안이 얼얼하다” “입 안에 불이 난다” “배 속까지 알알하다” “정신까지 몽롱하다” …. 누런 종이 위에 닭뼈가 쌓일수록 매운맛 표현 강도가 높아진다. 뜨거운 닭알찜이 가세해 ‘불난 집에 부채질’까지 한다. 식사 메뉴는 오돌뼈. 이 역시 매운맛이 만만찮다. 대접에 밥을 담고 그 위에 뻘건 오돌뼈 볶음을 얹어 낸다. 숟가락으로 쓱쓱 비빈 뒤 비닐장갑손으로 김에 싸서 꼭꼭 쥐어 주먹밥을 만들어 먹는다. 입 안에 퍼지는 알싸한 맛, 닭발보다는 약하지만 그래도 맵다.

 손님의 80%가량이 20·30대 젊은 여성. 의외로 행복한 표정이다. 나머지는 그녀들에게 끌려온 남성. 이들은 대부분 매운맛에 어쩔 줄 모른다. 그래도 합석한 여성이 오돌뼈 주먹밥 하나만 쥐어주면 얼굴이 환해진다. 어린이나 노약자, 위가 약한 사람들은 아무리 매운맛이 좋더라도 ‘접근 금지’다.

유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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