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새벽을여는사람들>3.서울 최고참 환경미화원 김원수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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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새해 소원이요? 사고 안나는 거죠.올 한해만이라도 다치는 미화원이 한명도 안나왔으면 좋겠어요.』 5일 오전6시 서울성북구정릉4동의 산으로 뻗은 오르막길 중턱에 있는 쓰레기 하치장에서 만난 환경미화원 金元壽씨(59)의 새해 바람이었다.
그는『작년 가을에 쓰레기가 가득 찬 리어카를 끌고 정릉 산동네를 내려오다 비탈길에서 구른 동료가 넉달째 병원 신세를 지고있다』며「무사고」를 거듭 빌었다.
金씨는 매일 오전5시30분에 장위동 집을 나선다.
담당구역이 정릉4동에서도 고지대라 눈이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들으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고 했다.
서울시에서만 많을 때는 한해 30명이상이 작업중 교통사고등으로 숨지는 현실이고 金씨 자신도 수십차례 크고 작은 사고를 겪은 터라 걱정하는 것도 당연하다.
차가 많이 다니는 도로변부터 시작해 주택가 골목골목을 쓸고 치운다. 산동네인 탓에 쓰레기를 일일이 질통으로 리어카까지 옮기는 작업이 덤으로 따라 다닌다.그때문에 한 리어카를 채우는데2시간씩이나 걸린다.귀가시간은 보통 오후11시.
金씨는 미화원경력 35년째로 서울시에서도 최고참이다.
경남 함양의 빈농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4세때 부친을 잃었다.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무작정 대구로 떠났지만 궁핍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소년시절 내내 굶기를 밥먹듯하다 군에서 제대한 직후인 59년에『입에 풀칠하는 것만도 어디냐』는 생각으로 기꺼이 이 직업을택했다. 박봉이지만 그동안 슬하의 3남1녀중 둘은 대학까지 마치도록 뒷바라지 해준 것이 金씨의 은근한 자랑.
그의 장남(33)은 한국통신 직원이고 차남(30)은 서울시수도사업소 공무원이다.딸은 결혼해 미국에서 살고 있고 24세된 막내는 군복무중.
정년을 1년 앞둔 金씨는『아이들이 별 말썽 안부리고,그렇다고기죽지도 않고 장성해 준 것이 고맙다』고 털어놓았다.
35년 경력이지만 그가 받는 봉급은 수당.상여금까지 합쳐 월평균 90만원.
『서울시와 김포 매립지측이 쓰레기 반입을 놓고 티격태격하고 있어 우리 미화원들만 골탕을 먹습니다.산업쓰레기 때문인데 정릉동에는 영세한 가내공업체가 많아요.거기에서 나오는 쓰레기들을 안치우자니 밤에 딴 곳에 몰래 버릴 것이 뻔하고 수거하면 매립지측에서 받아주지 않고….』 金씨는『서울시의 쓰레기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며 행정당국과 주민 모두의 의식전환을 촉구했다.
『내 고생이야 시대를 잘못 타고 난 탓으로 돌리지요.그러나 요즘은 얼마나 좋아졌습니까.우리 애들이라도 좋은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주었으면 하지요.』 그는 그동안 수십차례 모범미화원 표창을 받았다.재작년 12월에는 盧泰愚당시대통령의 초청으로 난생처음 청와대 구경도 했다.
〈盧在賢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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