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잘 챙겨야 한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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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쌀개방을 둘러싼 국제화 후속조치와 개각에 파묻혀 정부는 물가안정을 잊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정부 한 구석에 공백이 생긴 듯하다. 정부부처가 국민의 관심이 쌀개방에 쏠려있는 사이에 각종 공공요금 인상과 세금 신설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동안 밀려있던 요금현실화를 일거에 해결하려는 움직임이다.
내년 물가는 거시적·미시적 양면에서 불안요인을 안고 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잠재적인 물가불안 요인에 관한 정책방향이 정립되지 않는한 스태그플레이션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가불안을 염려하는 근거는 다음 몇가지 요인이 중첩되어 있다는 점이다.
첫째는 극히 미시적인 관점에서 타당성이 있는 각 부처의 공공요금 인상이 경제 전체적으로 조정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까지 억눌러왔던 철도·지하철·버스 및 택시 등의 교통요금과 수도·쓰레기 및 우편요금 등 공공서비스요금의 인상은 하나하나만 뜯어보면 다 정당한 인상요인이 있다. 또한 사회간접자본 재원확충을 위한 교통목적세의 신설과 소주 및 담배 등에 소비세 및 환경목적의 세금이 부과되고,세탁기와 지프 등에 대한 특소세 신설로 서비스뿐 아니라 공산품에도 자동적인 인상요인이 산적해 있다.
둘째는 금융실명제와 금리자유화의 후유증을 줄이기 위해 늘어난 통화와 증권시장에 유입되는 외국인 주식자금 등으로 통화관리가 방만해져 초과수요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셋째는 국제화와 규제완화 등으로 정부의 시장개입이 줄어들면서 기업의 가격전가에 대한 적절한 관리능력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제화와 규제완화는 장기적으로 경쟁을 강화시키겠지만 독과점적 시장구조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단기간의 혼란은 오히려 더 커진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국제화에 대비한 국내 경제개혁과 제도정부는 국제화 기획단을 만들고 사람을 파견하는 식으로만 피상적으로 대처해서는 안된다.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우리 경제에 체질화되어 있는 고비용­저수익 구조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재의 경기나 통화수준,그리고 내년도의 경제를 전망하면서 정부는 경기나 물가가 양극화되어 있다는 측면을 간과하고 있다. 일부 수출대기업이나 고가품 상점·주식시장에는 돈이 몰리나 재래시장과 내수 중소기업은 체감경기가 심각한 불황이다. 이같은 구조에서 생활물가가 오르리라는 예상은 실로 심각한 뉴스가 아닐 수 없다. 물가상승으로 인한 충격이 비대칭적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물가가 안정되지 못하면 노사관계도 불안해지고 국제화시대의 정부 거시정책 범위도 점점 좁아진다.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기업합리화도 늦어지고 진정한 개혁은 그만큼 늦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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