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인질 치료 왜 막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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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로 탈레반에 납치된 지 17일째를 맞는 한국인 인질들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까. 한국 대표단과 탈레반 무장세력의 직접협상 개시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일단 추가 살해의 위협은 잠시 멈춘 상태다.

하지만 생사의 기로에서 고산지대를 이리저리 끌려 다닌 결과 대부분의 인질은 정신적.신체적으로 탈진해 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여성 두 명은 건강이 매우 안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은 3일 이들을 만나러 간 아프간 의사들의 진료를 허용하지 않았다. 인질들이 억류된 장소가 알려질까 우려했기 때문인 듯하다.

인질들이 어디에 몇 명씩 분산 수용돼 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다만 탈레반이 납치 직후 소그룹으로 나누어 가즈니주 일대 민가 등으로 분산시켰으며, 1일 일부를 인접 팍티카주로 옮긴 것만 알려졌을 뿐이다.

◆아프간 의사 접근 허용 안 해=인질 건강 문제와 관련, 2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와하즈 병원 측이 인도적 차원에서 한국인 인질들을 치료하기 위해 의료진을 가즈니주로 급파했다. 그러나 탈레반은 이들의 진료를 허용하지 않았다. 탈레반의 대변인을 자처하는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의료진과 인질들의 만남을 허용해 달라는 요청을 거절하면서 "만약 인질들의 건강이 걱정된다면 아픈 인질 두 명과 교환할 수 있도록 두 명의 탈레반 수감자를 석방하라"는 기존의 요구를 되풀이했다. 앞서 그는 "의사들의 제안을 신중하게 검토해 볼 것"이라며 치료 허용 가능성을 시사했었다.

탈레반의 여러 관계자는 최근 잇따라 "인질 대부분이 아프고 특히 여성 두 명이 많이 아프다"고 말했다. 병이 중하다는 여성 인질 두 명이 누구인지, 구체적 병명이 무엇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외신에 따르면 "일부가 소화기 질환을 앓고 있다"고 한다. 본지 통신원 알리 아부하산(가명)은 "정신적으로 심각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인질로 잡혀 있는 한지영씨의 어머니가 "딸이 저혈압 증세를 보여 아프간에 가는 걸 반대했다"고 하는 등 몇몇은 출국 전부터 건강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아프간 현지에 파병 중인 동의부대 소속 군 의료진이 가즈니주 인근에서 대기 중이라고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이 3일 밝혔다. 천 대변인은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아프간 의사들이 가즈니주 현지로 떠난 것과는 별개로 우리 군 의료진도 가즈니주에 근접해 대기하고 있다"며 "군 의료진은 현재 파병 중인 동의부대 소속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인질 상당수는 가즈니주에=아마디는 아프간 정부군이 가즈니주에서 전단 살포와 수색작전을 펼친 다음날인 2일 "현재 한국인 인질들은 가즈니주에 없으며 자불.칸다하르.헬만드 등 아프간 내 여러 주에 분산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 지역이 가즈니주에서 상당히 멀기 때문에 건강이 좋지 않은 인질들을 데리고 이동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게다가 탈레반 납치세력의 지도부가 여전히 가즈니주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에서 인질들을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길 경우 관리가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아마디의 발언은 혹시 전개될지 모를 인질 구출 작전에 대비한 교란전술로 보인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인질 상당수는 여전히 가즈니주 일대에 머물고 있으며, 일부가 팍티카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짐작된다.

뉴스위크의 2일자 보도에 따르면 탈레반은 한국인 인질 23명을 납치 직후 5개 그룹으로 나누어 가즈니주 카라바그.안다르.데약 지역으로 각각 분산했다. 그러다 1일 아프간 정부군이 가즈니주 일부 지역의 민가를 수색하는 등 압박을 가하자 일부 탈레반 대원이 이날 오후 인질 21명 중 세 명을 이끌고 인근 팍티카주로 이동했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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