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22명 안전은… 배 목사 쏜 탈레반 강경파가 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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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한국인 인질 22명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탈레반은 25일 한국인 인솔자였던 배형규 목사를 살해했다. 피랍 사태 8일째를 맞은 26일 정부는 총력전을 펴고 있다. 대통령 특사 파견은 물론 미국의 협조를 받기 위해 외교안보 라인을 가동하고 있다.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족 품으로 돌아올 수 있게 애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태 해결의 관건은 역시 탈레반 내부의 강경 기류와 아프간.미국 정부의 원칙론(테러 세력과의 타협 불가)을 어떻게 해소하느냐다. 정부 관계자는 26일 "향후 협상을 낙관하지 못하는 이면에는 탈레반 내 강온파의 대립이 깔려있다"고 말했다.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한국인 인질들은 탈레반 무장세력이 장악한 가즈니주(州) 카라바그 지구의 은신처에 분산돼 있다. 억류 장소는 사막이나 다름없는 2000m 이상의 고산 지대라고 한다.

미 CBS방송과 전화통화를 한 한국인 여성은 "현재 한국인 인질은 남녀 두 그룹으로 격리돼 있다"고 말했다. 여성 18명과 남성 4명이 따로 억류됐다는 것이다. 피랍 기간이 길어지고 배 목사가 살해돼 인질들은 극도의 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일부 피랍자의 건강도 크게 악화된 상황이다.

22명의 인질 중 일부는 온건파가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25일 피랍자 8명을 석방하기로 했던 세력은 온건 그룹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각 지방의 어른 격인 슈라(부족 원로회의)의 중재에 귀 기울이며 석방 대가로 지급될 몸값에 더 신경쓰고 있다. 한국군 철수나 탈레반 수감자 석방은 그 다음 관심사다.

문제는 강경 그룹이다. 배 목사는 이들에 의해 살해됐다. 송민순 장관은 25일 국회 연석회의 때 김장수 국방장관과 얘기를 나누면서 '8+6+9'(피랍자 23명을 의미)라는 메모를 썼다.

특히 '9' 밑에는 '강경' '살해 가(可)'라는 단어가 적혀있었다. 배 목사가 살해된 그날, 우리 정부가 강경파에 잡힌 일부 피랍자의 신변이 위험하다는 정황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반면 '8+6' 밑에는 '돈' '해결'이라고 쓰어 있었다. 일각에선 송 장관의 메모를 바탕으로 탈레반이 몸값을 받고 14명을 1, 2단계로 나눠 석방한 다음 9명(강 목사 피살 이후 현재는 8명)을 놓고 맞교환 협상을 할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본지 7월 25일자 1면>

탈레반 측은 이날 협상 재개 움직임을 보였다.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하는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외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들(아프간 정부)이 평화적 해결에 대한 희망을 줬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음식물과 생필품, 의약품을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배 목사 살해에서 드러난 것처럼 강경파가 협상의 주도권을 쥐고있어 당분간 전원 조기 석방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추가 살해사건이 터질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동료 수감자 석방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추가 살해' 협박을 무기로 한국 협상팀을 압박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강경파는 인질 몸값보다 수감자 석방을 중시해 왔다. 탈레반 대변인은 '8대 8'의 맞교환을 제안해 놓은 상태다.

그러나 탈레반 수감자 석방권을 쥔 아프간 정부는 여전히 협상에 부정적이다. 수감자 석방은 물론 몸값 지불도 인정할 수 없다는 강경 기류가 흐른다.

전문가들은 "인질을 모두 구출하려면 강온파에 따라 협상 전략을 달리하는 대응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온건파가 잡고있는 인질들이 먼저 풀려나도록 역량을 집중, 사태 해결의 돌파구를 찾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탈레반 강경파가 요구하는 수감자 석방을 추진하면서 피랍사건의 단계적 해법을 찾자는 것이다.

아프간 정부의 협조를 얻기 위해 경제협력 방안을 제안할 필요성도 지적된다. 26일 대통령 특사로 급파된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정보 관계자는 "탈레반 강경파가 동료 수감자의 석방을 끝까지 고집하면 피랍사태의 장기화가 불가피해진다"며 "아프간.미국 정부와의 협조 여부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피랍자와의 직접 접촉을 추진 중이나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이철희.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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