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머니 허둥댈 일 아니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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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1월 정부가 외국인에게 국내 주식시장을 개방했을 때부터 해외자본의 지나친 유출입으로 주가의 변동성이 커지는 등 불안장세가 일어나고 물가·금리 및 환율에 영향을 주게될 경우가 많을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동안 침체국면에 빠졌던 증시가 최근 해외 주식매입자금이 대거 몰리고 국내 소액주주까지 적극 가담함으로써 급격한 상승세로 돌아서자 그같은 우려가 다시 고조되고 있다. 벌써부터 일부에서는 국제투기성 자금(핫머니)이 국내 금융시장을 교란시킬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적절히 제어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성급한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입을 둘러싸고 정부가 이를 직접 규제하는 방식은 가속화되고 있는 경제의 국제화를 정면으로 거스를 뿐만 아니라 국내금융시장과 국제금융시장을 연계시켜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지금까지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위험이 있다. 무엇보다도 자본·금융시장개방 스케줄을 예정대로 지키겠다고 공언해 왔던 정부의 대외 신인도에 큰 흠을 남겨 여타 국제경제활동이 매우 껄끄러워질 것을 각오해야 한다.
국내 투자자들이 초단기 단타매매로 이익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외국투자자들도 핫머니로 같은 시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다 하더라도 주식시장이 개방되어 있는한 이를 규제할 수도 없고,또 규제해서도 안된다.
정부가 우선 해야할 일은 국내에서의 주식투자 수익을 노려 불법적으로 들어오는 자금을 차단하는 일이다. 동남아시장 등에서 투자매력을 잃은 달러가 비밀리에 끼어들 수가 있으나 이는 매우 한정되어 있다.
정상적으로 유입된 자본의 투기는 주식 외환 상품 등의 매매에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서 주가 환율 금리 변동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정부의 대응책도 이같은 투자 속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정부는 주식시장에 이어 장차 채권시장개방 스케줄도 잡고 있다. 현재의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가 적정한 것이냐에 대해서는 전문가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개방의 속도조정을 과거와 같이 증시부양책의 수단으로 삼으려 해서는 안되며 국내외 경제여건에 맞추어 조정해야 한다. 금년 증시개방은 3년의 예고기간을 거친 것인데도 한국은행이 국내 금융기관들에 우선 유가증권 매입을 삼가달라고 하는 것은 체통에 맞지 않는 일이다.
자본시장 개방에 의해 이미 예상했던 통화관리 부담이나 환율의 평가절상 압력에 적절히 대응치 못하고 허둥지둥 댄다면 앞으로의 개방확대에 따른 불안감만 더욱 증폭시킬 뿐이다. 통화관리 방식의 적극적인 개선을 통해서 현재 나타나고 있는 문제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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